풍원이가 살미장에서 장세 시비가 붙어 소금은 팔아보지도 못하고 봉변만 당한 채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돌아온 것은 한밤중이 되어서였다. 우갑 노인은 후줄근하게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풍원이를 보고 빙긋하게 웃기만 했다.

“그래 혼자 장사를 나가보니 어떻더냐?”

“몽땅 도둑놈 소굴 같습니다요.”

“앞으로 그 도둑놈들과 평생을 아귀다툼하며 살아야할 텐데 살 수 있겠느냐?”

“싸움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래서 그놈들을 몽땅!”

살미장에서 무뢰배들에게 당했던 봉면을 떠올리며 풍원이가 분을 참지 못했다.

“쌈을 배우면 그놈들을 모두 해넘길 수 있겠느냐?”

“다시는 장터에서 그런 짓거리를 못하게 반병신을 만들어놓고 싶습니다!”

“많이 억울한가 보구나. 억울하면 돈을 벌거라!”

풍원이는 싸움을 배워 당장이라도 무뢰배들을 때려눕히고 싶은 심정인데, 우갑 노인은 남의 심정도 모른 채 돈을 벌라는 이야기를 했다.

“전 그놈들에게 당한 앙갚음을 꼭 할 것입니다요!”

“진정 그놈들을 누르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더냐?”

“그럼 무뢰배 놈들을 잡는데 뭔 방법이 있겠습니까?”

“짧은 놈!”그놈들이 장바닥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게 무엇 때문이겠느냐?”

“남의 돈을 빼앗으려는 것이지 뭐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니냐. 돈을 벌어 그놈들을 사서 부리면 되지, 일일이 그놈들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대거리하며 맞붙어 싸울 테냐? 그러다가는 평생 장바닥에서 쌈박질만 하다 어느 놈 손에 비명횡사하는 줄도 모르고 저승 귀신 되겠다. 지금 당장이야 분하겠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무뢰배들을 제압하는 길인지 잘 생각해 보거라!”

우갑 노인의 말처럼 장날 장마당에서 장세를 받으러 다니는 무뢰배들은 그저 남의 등이나 쳐서 먹고사는 그런 놈들이 아니었다. 물론 타동에서 온 장꾼이나 장사꾼들에게 공갈을 쳐서 뜯어먹고 사는 시비꾼도 있었다. 풍원이에게 접근해서 소금 한 되를 장세로 뜯어간 고수머리는 그런 시비꾼에 불과했다. 그러나 무뢰배들은 그런 잔챙이와는 달랐다. 무뢰배들은 여러 놈들이 떼를 이루고 있고, 그 뒤에는 그들을 부리고 조종하며 뒷배를 봐주는 상인조직이 있었다.

“그래, 소금은 얼마나 팔았느냐?”

“하나도 팔지 못했습니다요.”

“팔지도 못하고 빼앗기기만 하고 게다가 매만 작신 벌고 돌아왔구먼.”

우갑 노인이 풍원이를 놀렸다.

“살미 놈들을 언젠간 반드시 절단 낼 것입니다!”

“네가 그놈들을 잡는 건 쌈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서 장사를 배우고 익혀 살미장 상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

풍원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또 나가야지?”

“…….”

우갑 노인이 물었지만 풍원이는 거푸 대답을 피했다. 풍원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장사를 나가야겠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왜 엄두가 나지 않느냐?”

우갑 노인이 풍원이 속내를 읽어내고는 물었다.

“이유도 모른 채 제 물건을 뺐기고 장사는 해보지도 못하고 돌아온 것이 너무 분하기도 하지만, 실은 또 나갔다가 당하면 어떻하나 겁이 나기도 합니다요.”

풍원이가 솔직하게 속내를 내보였다.

“왜 안 그러겠느냐. 그것도 첨 장사를 나갔다 봉변을 당했으니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일은 또 벌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누가 도와줄 수는 없다. 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꺾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막상 그런 일을 당하니 뭐를 어찌해야할지 전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누군들 처음에야 다 그렇겠지. 그렇게 하나둘 경험이 쌓이다보면 방도도 생각나겠지.”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네가 여기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

우갑 노인이 가라앉은 풍원이 마음을 북돋아주었다.

“정말 저도 그렇게 될 날이 올까요?”

“당연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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