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내가 자장면을 좋아하게 된 것은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아들, 딸 도시락 챙기기에 힘든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내 점심은 늘 자장면을 시켜 먹는데서 시작됐다.

그래서 모든 직원이 도시락을 싸오지만 나는 항상 자장면을 시켜먹었다.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는 중국 음식점을 단골로 정해 점심때만 되면 배달원이 으레 내 책상위에 자장면 한 그릇을 가져다 놓는다. 완전히 자장면 단골 식객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장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발동하는 습관에 젖어버렸다.

옛날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시절 이야기다. 한 달에 한 번씩 가족 외식하는 날은 월급날 이었다. 그리고 외식 메뉴는 중국집 자장면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아이들마저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중국집을 찾아 외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메뉴는 자장면이 된 것이다.

내가 이 식품을 좋아하는 것은 밑반찬이 별로 없어도 간단히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 또 자장 맛이 식욕을 돋우는 독특한 향기가 있어 내 기호에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즐겨먹는 대중 음식이라는 것이 호감이 간다. 즉 우리 인간관계도 자장면 같이 구수하게 살 수는 없을까.

나는 지금도 가끔 아내와 같이 변두리에 있는 손 자장집을 찾는다. 가서 보면 넓은 주차장이 초만원이고 식당은 앉을 자리가 없어 차례를 기다리는 정도이다. 왜 그렇게 식객들이 많이 올까. 손으로 쳐서 뽑아 면발이 굵고 부드러우며 여기에다 자장을 버무리니 특이한 맛이 나기 때문일까.

오래된 옛날 아이들 기를 때 자장면을 외식하던 추억을 더듬으면서 우리 두 늙은이는 손자장집을 나왔지만 그 구수한 맛을 못 잊어 했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라 한다. 못 먹고 못 입던 가난한 시절에는 자장면도 못 먹는 가난한 사람도 많았다. 주지육림(酒池肉林)에 산해진미(山海珍味)로 흥청망청 먹어대는 것도 내 자유라 하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대중 음식 자장면 같은 구수한 식객은 될 수 없을까.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고독감을 이기지 못해 귀한 목숨마저 버리는 고독사가 늘고 있다. 혼족, 혼밥, 혼술, 혼캠핑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홀로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가정에서 가족관계도 너무나 비정(非情)하게 변해 간다. 또 이웃 간에도 서로 불신하고 헐뜯고 사는 냉엄한 세상이 되고 있다. 들려오는 소식은 돈 몇 푼 때문에 귀중한 인명을 살상하고 치정(癡情)에 얽힌 성폭력, 부정부패로 얼룩진 공직사회 비리, 등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사는 것이 마음은 더 편하리라.

크게 가진 것도 없고 뛰어나게 고귀한 품격도 없지만 어느 곳을 가더라도 모든 사람이 서로가 웃으며 좋아하는 자장면 같이 구수하고 따뜻한 정이 충만한 그런 세상에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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