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265년 조(趙)나라 효성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어머니인 태후가 섭정을 하였다. 그 즈음 강대국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이 소식에 다급해진 조나라는 우방인 제(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는 조나라의 태후가 가장 총애하는 막내아들 장안군(長安君)을 인질로 보내줘야 구원병을 파견할 수 있다고 했다. 태후는 그 조건을 단박에 거절했다. 그러자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라 제나라의 조건을 들어줘야 한다고 간청했다. 하지만 태후는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조정 대신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내 막내아들을 인질로 주자는 말을 꺼내는 자는 그 얼굴에 침을 뱉어주겠소!”

회의를 마치고 연로한 신하 촉룡(觸龍)이 태후를 뵙고자 했다. 태후는 화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촉룡이 천천히 걸어가 태후께 인사를 올렸다.

“태후마마, 혹시라도 옥체가 불편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뵙고자 했습니다.”

“요즘은 다리가 불편해요. 가마에 의지해 거동하는 형편입니다.”

“제 아들놈이 못나서 재주가 없습니다. 원컨대 제가 죽기 전에 궁중의 호위병 자리가 있으면 채용해 주십시오. 간청 드리는 바입니다.”

“그야 어려울 것 없지요. 아버지도 자식을 그리 사랑하는군요?”

“제가 보기에 태후께서는 아들보다 딸을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요? 그래도 아들이 더 소중하지요.”

“아닐 겁니다. 태후께서 타국으로 따님을 시집보내고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또 매일 기도를 올리는 것이 따님의 자식이 그 나라의 왕위를 이어받길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야 당연하지요.”

“태후마마, 조나라 왕의 자손 중에  3대가 이어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지요.”

“어느 왕도 3대를 지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그건 왕의 자손이 못난 것이 아니고 지위는 높고 봉록은 넉넉하지만 나라에 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태후께서는 막내아들 장안군에게 직위를 높여주고 많은 녹봉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후에 태후께서 돌아가시면 장안군이 어떻게 혼자 자신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귀엽거든 사서라도 고생을 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태후께서는 아들보다 딸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순간 태후는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 내가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장안군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도록 하지요.”

며칠 후 제나라가 구원병을 보내주어 조나라는 진나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세가(史記世家)’에 있는 이야기이다. 

우회전략(迂廻戰略)이란 돌아가는 것이 바로 가는 것보다 빠른 길이라는 뜻이다. 먼 곳에서부터 천천히 접근하여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것이다. 쉽게 분노하는 상대를 설득하려면 막힌 것을 피하고 열린 곳을 파고들어야 한다. 평소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이어야 이런 깊은 꾀를 낼 수 있는 것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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