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어디서 굴러온 놈이냐?”

그때 누군가가 풍원이를 불러 세웠다.

“왜요?”

풍원이가 지게를 진 채 고개만 돌리며 되물었다. “이 자식이 물어보면 냉큼 대답이나 할 것이지, 어디다대고 토를 다는 겨?”

까무잡잡한 얼굴에 곱슬곱슬 머리털이 대가리에 납작하게 달라붙은 놈이었다. 눈이 반들반들한 것이 어디에다 내놔도 기가 죽지 않을 정도로 약게 생겨먹었다. 고수머리가 풍원이를 을러댔다.

“충주서 왔는데요.”

“뭘 팔러왔어?”

“소금요.”

“그럼 장세를 내야지!”

고수머리가 풍원이에게 장세를 내라고 했다.

“장세라니요?”

풍원이가 듣느니 처음이라 물었다.

“남에 장에 와 물건을 팔려면 장세를 내야할 것 아녀?”

“그런 얘기는 처음인데요.”

“충주선 어쨌는지 몰라도 살미장에서는 장세를 내야 물건을 팔수 있다. 그러니 냉큼 내놔!”

고수머리가 빨리 장세를 내라며 겁박을 했다. 고수머리는 소금 한 되를 장세로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더니 소금을 받아가지고는 쏜살같이 장터 안쪽으로 사라졌다. 풍원이는 팔아야할 소금을 팔기도 전에 장세 명목으로 퍼주고 말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없으니 막막하기만 했다.

풍원이도 아무 생각 없이 고수머리가 사라진 장터 안쪽으로 따라 들어갔다. 장터 안으로 들어가니 그 속은 아비규환이었다. 장사꾼들이 제 물건을 팔기위해 제각각 질러대는 소리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장사꾼들과 장꾼들이 뒤엉켜 온통 왕왕거리기만 한데도 사람들은 물건 흥정을 하며 잘도 장사를 하고 있었다. 풍원이는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디엔가는 지게를 내려놓고 소금을 풀어놔야만 필요한 사람들이 보고 살 텐데 그런 틈바귀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장터 안은 손바닥 만한 자리도 이미 앉는 장사꾼들이 정해져 있었다. 다시 지게를 지고 장을 돌아다니다 겨우 자리를 잡은 곳이 가축전 돼지를 파는 귀퉁이었다. 가축전은 소금을 풀어놓을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옹색하기도 했지만 땅바닥이 지저분해 도무지 먹을 물건을 펼칠 수가 없었다. 풍원이가 지게다리에 소금 섬을 올려놓은 채 멱서리 주둥이만 풀어놓고 살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소리를 질러 사람을 불러 모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자꾸만 주변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얼굴이 화끈거려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만 지켜볼 뿐이었다. 소금이 팔릴 리 만무했다.

“첨 나왔나벼!”

“총각 폼새를 보니 그런가벼!”

강아지와 닭과 병아리를 가지고나와 팔고 있던 아낙들이 서로 보며 속닥거렸다. 풍원이 귀에는 속닥거리는 아낙들 소리가 꽥꽥거리는 오리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기가 죽어 소금을 살 장꾼들을 불러야겠다는 풍원이 생각은 점점 더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래도 장사를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지가 몇 년인데, 풍원이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장돌뱅이 장사는 앉은장사와는 전혀 색다른 장사였다.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어떤 곤경이 닥치더라도 혼자 헤쳐 나가야만 하는 것이 장돌뱅이 장사였다. 풍원이는 자신의 처지가 알몸으로 건천에 서있는 것처럼 썰렁하기만 했다. 장바닥에 사람은 백지알처럼 많아도 누구 한 사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고립무원이었다. 이제껏 장사를 배우면서도 철저하게 혼자임을 느끼는 이런  가슴이 저릿함은 처음이었다. 그때 옆에서 히히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촌놈, 지금은 술에 취해 멋도 모르고 가지만 집에 가 술 깨면 기암을 할게다!”

돼지전에서 새끼돼지를 파는 가축상이 자루를 매고 가는 술꾼의 뒷통수를 보며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돈은 암퇘지 값을 주고 사갔는데 수퇘지로 둔갑한 것 보면 환장하겠지.”

같은 가축상을 하는 다른 패거리가 맞장구를 쳤다. 풍원이도 언젠가 전에 찾아왔던 장사꾼을 통해 귓등으로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돼지새끼는 수퇘지보다 암퇘지가 더 비쌌다. 암퇘지는 새끼를 낳아 팔면 살림에 보탬이 됐지만 수퇘지는 키우면 키울수록 밥만 축내고 고기로 팔아도 누린내가 나서 암퇘지보다 값을 훨씬 낮게 받았다. 그래서 가축상들은 잘 팔리지 않는 수퇘지새끼를 암퇘지로 속여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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