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다 이번 장사는 전에서 하는 앉은장사가 아니고 정해진 자리도 없이 이 장 저 장을 떠돌며 하는 뜨내기 장돌뱅이 장사였다. 윤 객주 상전에서 장사를 배우며 만났던 장돌뱅이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몸뚱이 하나로 장바닥에서 굴러먹은 탓에 얼마나 거친 사람들인지 풍원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장돌뱅이들 틈바귀에서 장사를 해보라니 그것도 혼자 해보라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만큼이나 두려웠다.
“우선 만년구짜부터 해보거라.”
“그게 뭔데요?”
“소금장사다!”
우갑 노인이 소금을 팔아보라고 했다.
“소금이 어째 만년구짜 장사예요?”
“소금은 상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없어도 안 먹고는 배길 수 없는 물건 아니냐? 그러니 초자인 네가 팔아보기에는 적격이 아니겠느냐? 소금 반 섬을 내줄테니 한 번 나가 팔아오너라.”
“알겠습니다요.”
“그래 어디로 가려느냐?”
“내일이 살미장이니 그리로 가볼까 합니다.”
“살미장에서 네가 잘 할 수 있겠느냐?”
“그래도 인총 많은 곳이 물건을 팔기도 수월하지 않겠습니까요?”
“과연 그럴까?”
우갑 노인은 탐탁찮게 여기는 눈치였다. 그러나 풍원이의 결정을 나서서 말리지도 않았다.
이튿날 새벽이 오기도 전에 일어나 풍원이는 상전에서 내준 소금 반 섬을 지고 살미장으로 떠났다. 살미장은 충주에서 동남쪽으로 이십 리 쯤 떨어져있었다. 읍성 남문을 나와 대림산성을 왼편으로 끼고 성 아래 달천강 길을 따라 걸었다. 달천강 길은 아주 오래전부터 새재와 하늘재를 넘어 영남의 육로와 연결되는 주요한 길이었다. 달천강 역시 남한강 큰 강과 연결되어 많은 물산들이 오가는 긴요한 물길이었다. 달천강 육로나 물길이나 영남과 충청도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고 충주를 거쳐 한양까지 오가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길이었다. 이 길의 길목에 살미장이 있었다. 살미는 청풍과 충주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죽령을 넘어 육로로 한양으로 가거나 한양에서 내려오는 관원들은 역마를 이용하기 위해 이 길을 이용했고, 죽령이 생기기 훨씬 전에 생겨난 하늘재를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영남사람들과 교류를 해오던 곳이 살미였다. 살미장은 충주 향시를 제외하고 인근에서 내창장과 버금갈 정도로는 큰 장이었다. 옛날부터 ‘살미에 가서는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창한 곳이 살미장이었다.
풍원이가 소금지게를 지고 살미 장터로 들어섰다. 장터는 이미 사방에서 모여든 장사꾼들과 장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보자 갑자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게는 어디다 내려놓고 소금을 필요로 하는 장꾼들은 어떻게 불러모아야할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속에서는 두근두근 쉴 새 없이 방망이질이 일어났다. 어디를 가도 따로 정해진 자리가 없는 것이 장돌뱅이들의 신세였다. 그냥 떠돌다 아무데라도 엉덩이 붙일 자리가 있으면 짐을 내려놓고 호객을 하고 물건을 팔아야하는 것이 장돌뱅이들이었다. 그러나 처음 장돌뱅이를 시작한 풍원이는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풍원이가 소금지게를 지고 장터를 헤매다 목물전 한 쪽에 있는 빈자리를 보고 지게를 내려놓았다.
“누가 거기다 물건을 풀라고 했냐!”
눈이 위로 치켜 째진 목물상이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이걸 좀 팔아보려고 하는데…….”
풍원이가 주저거리며 목물상 눈치를 살폈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 돼 열 받고 있는데 어디서 촌닭까지 나타나 정신 사납게 얼쩡거리고 지랄이여!”
“이건 소금인데…….”
풍원이는 자신이 팔려는 것은 소금이니 목물상에 피해가 가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소금이고 지랄이고 남 장사 방해하지 말고 당장 안 빼?”
목물상이 눈깔을 부라리며 지랄을 했다.
목물상이 약 먹은 놈처럼 하도 개지랄을 떨어대니 풍원이는 더 이상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소금지게를 지고 일어섰다. 그러고 다시 장바닥을 헤매다 난전에 펼쳐진 대장간을 발견했다. 그런대로 장터에서 헐렁해 보이는 곳이 그곳이었다. 풍원이가 대장장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지게를 받치려 했다.
“딴 데로 안가!”
대장장이가 망치로 모루를 탕탕 치며 소리를 질렀다. 풍원이는 지게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다시 걸며졌다. 풍원이가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서 갈 바를 모르고 장마당을 두리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