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모 주간지에서 ‘가장이 들어주어야 가정이 행복해진다’라는 주제의 글을 읽게 됐다. 자녀들이나 아내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인 아빠는 되도록 말하지 말고 많이 들어주라는 것이다.

현재 중년이 되어 있는 많은 가장들은 어린 시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와의 대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끼리의 대화방법을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반면 아랫사람이나 가족들에게는 말 수는 적고 권위적이 된다. 자녀들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하는 것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고, 중간쯤에 이미 의도를 파악했다고 판단해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잘못 된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래서 부하직원은 편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자녀들은 아빠는 말이 안 통한다면서 점점 멀리하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주변에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가정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남편이자 아빠인 가장은 아내와 자녀들의 말을 성심성의껏 끝까지 들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맞장구도 쳐 주지 않는다. 중년의 남자들에게 대화는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며, 가능한 필요한 것만 간단명료하게 끝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정보는 주고받았지만 마음이나 감정은 교류가 없었고, 상대방은 답답한 마음에 관계의 벽을 더 높이 쌓아 간다. 그래서 자녀들은 아빠 보다는 수다쟁이 엄마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더 잘 통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중년의 가장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중년의 남성들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대화를 할 때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는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나 실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장에서는 중간 관리자 역할, 가정에서는 가장의 역할이 주는 무언의 압박감 때문에 부족하거나 실수하는 모습에 대한 부담감이 큰 것이다.

대인 관계에서 지나치게 조심하게 되면 대화는 형식적이 되고, 친밀해지기 어렵다. 가정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여러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모든 아내들이 남편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가 부족하다고 털어 놓는다. 대화를 나누는 절대적 시간도 하루에 5분이 안되기도 하지만 그 5분 동안에 마음까지 나누는 시간은 채 1분도 안 되기 때문이다. 남편과는 어려웠던 감정의 대화가 낯선 이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터뜨리기 시작하니 너도나도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놀라면서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냐고 따지듯이 묻고, 아내는 당신 탓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마음이 통하는 대화는 그리 많지 않다. 오랜 시간을 만나온 지인 사이라도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필자도 지천명의 나이에 가까워져서야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알게 됐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노력 중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를 온전히 보여주기가 두렵고 어색하다. 통(通)하지 않으면 관계는 병든다. 오늘 하루 얼마나 통하였는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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