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살주와 말뚝배기는 촌로의 누렁이를 팔아주고 하루에 열한 냥과 열 냥 닷 전을 챙겼다. 그 돈이면 쌀을 두세 가마나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쌀이 두세 가마면 상머슴 사경이었다. 남들은 일 년 내내 허리 빠지도록 일해서 받는 세경을 쇠살주와 말뚝배기는 입만 놀려 그것도 하루 만에 힘들이지 않고 벌어들였다. 우시장에는 흘러 다니는 돈도 달랐다. 엽전 부스러기만 오가는 잡상과는 달리 소를 팔고 사는 우시장에는 엽전 꾸러미가 뭉텅이로 돌아다녔다. 풍원이도 할 수만 있다면 소를 파는 것 같은 덩치 큰 장사를 해보고 싶었다. 큰돈이 흘러 다니는 우시장에서는 금방이라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그 돈을 밑천 삼아 독립하고 전을 열어 내 장사를 하면 금방이라도 불처럼 일어날 것만 같았다. 돈이 모이면 집칸이라도 먼저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청풍 김 참봉네 집에 잡혀있는 보연이를 데려오는 것이 풍원이의 우선 목표였다. 그 다음에는 전도 넓히고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모아 수백 마리 마소를 끌고 다니는 그런 거상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풍원이가 우시장을 나와 내창장 구석구석을 훑으며 다녔다. 소를 비롯한 돼지, 염소, 닭을 파는 가축시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지만, 사람들이 매일처럼 먹고사는 쌀과 각종 곡류, 자질구레한 남새를 파는 전들과 가가들은 아직도 복작복작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풍원이 눈에는 남새를 파는 장사가 사려는 사람보다도 훨씬 많아보였다. 남새 장사는 거개가 집에서 기른 채소나 산에서 뜯어온 나물을 가지고 장에 나온 여염집 아낙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릎 앞에 소쿠리나 보자기를 펼쳐놓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물건을 팔기보다는 수다에 더 골몰해있는 듯 보였다. 그러다 사람이 지나가면 남새를 사라며 호객을 하다 지나가면 이내 또 옆 아낙과 수다를 떨었다. 풍원이가 아낙들을 살펴보았다. 아낙들이 팔고 있는 남새를 몽땅 팔아도 송아지 반 마리도 사지 못할 것 같았다. 풍원이가 보기에는 남새를 파는 아낙들 장사가 시답잖아 보였다. 그러다 풍원이 눈에 색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장을 보러 나온 것 같지 않은데 남새전을 돌아다니며 값만 물어보는 아낙네였다. 그러다가는 어떤 남새장사 앞에서는 펼쳐놓은 보자기나 광주리를 통째 잡아당기며 팔라고 우격다짐을 했다.

“이 나물 몽땅 얼마에 줄려?”

“그 금에는 안 댜!”

“안 되긴 뭘 안 댜!”

“며칠을 한 건데 안 댜.”

“얼렁 팔고 또 가서 해오면 되지, 뭘 안 댜!”

“글씨, 안 된다니까.”

“이리 내놔!”

나물 주인이 안 된다고 하는데도 아낙네는 막무가내로 돈을 던지다시피 건네고는 나물을 들고 달음박질을 쳤다.

풍원이는 무엇을 하는 아낙네인지 궁금해져 뒤를 쫓았다. 아낙네는 장꾼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가더니 가가에 있는 채마전에 방금 산 나물을 넘겼다. 그러더니 채마전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아들고는 곧바로 되돌아서 남새를 팔고 있는 난전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아낙네는 난전에 나타나 남새를 팔러 나온 아낙들과 악다구니를 하며 또다시 밀당을 시작했다. 우시장에서 보았던 쇠살주나 말뚝배기처럼 장사꾼 아낙네는 남새 장의 거간꾼이었다. 거간꾼과 다른 점이라면 팔 사람과 살 사람 사이에서 흥정을 붙여 구전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장꾼의 물건을 싸게 사서 조금의 이문을 붙여 가가에 넘기는 중간상이었다. 물건도 없고, 가계가 없어도 장터에는 입 수단 하나만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보면 볼수록 장터는 요지경 속이었다. 풍원이는 장사가 굳이 물건을 만들고 물건을 팔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을 어렴풋 깨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내창장에 나와서 보고 배운 것이 많은 하루였다.

풍원이가 내창장을 둘러보고 장감고네 전으로 우갑 노인을 찾았을 때는 해가 이미 뉘엿거릴 때였다.

“그래, 장구경은 많이 했더냐?”

우갑 노인이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풍원이가 우갑 노인에게 물었다.

우갑 노인은 아침에 몰고 온 당나귀 거지게 양쪽에 보자기에 싼 궤를 싣고 있었다.

“암 것도 아니다.”

우갑 노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풍원이와 우갑 노인이 장감고의 배웅을 받으며 대창장을 떠나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뒷배꾼들이 장마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종일 술렁이며 왁작거리던 내창장은 언제 그랬던가싶게 썰렁함이 느껴질 정도로 어설펐다. 두 사람은 강가로 난 산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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