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청주시 교통정책과 교통정책팀장

청주는 철도로부터 철저히 소외돼 왔다. 110여 년 전 최초의 경부선 부설 계획 당시 청주를 경유하는 노선이 계획됐으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조치원과 대전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변경됐다. 이를 두고 청주의 유생들의 격렬한 반대 때문이라든가 철도에 별 관심이 없던 지역이라는 말들이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청주는 누가 봐도 철도가 경유하는 것이 당연한 대도시였으며, 철도 통과로 지역 발전의 기대가 컸었을 것이다.

1892년 경부선 1차 부설 계획에는 서울~용인~죽산~진천~청주~보은~상주 경로였으며, 1894년 2차 부설 계획은 서울~용인~죽산~진천~청주~영동~추풍령~김천으로 경부선의 청주 경유는 유지됐으나, 1901년 이 계획이 호남 방면 연결 강화를 위한 일본의 요구에 맞춰 서울~수원~천안~전의~공주~금산~영동으로 변경되고, 1903년 최단거리를 우선해 조치원 경유로 변경되면서 청주는 경부선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또한 충북선 청주역을 스스로 내쫓았다는 비판도 있으나, 철도역의 외곽 이전은 그 당시 일종의 정책 기조였고, 이런 정책 기조는 1983년 국토계획학회의 평가에서 교통체증 해소와 변두리 개발 등의 효과로 서둘러야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지금과 같은 청주역의 위치는 청주가 아닌 외부의 결정이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조치원에서 분기해 청주~충주~제천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충북선 경로는 충남 쪽에서 요구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청주에서 추진한 대로 부강~청주~충주로 이어지는 선형이었다면 충북선은 서쪽에서 진입해 성안길에서 90도로 휘어져 북상하는 것이 아니라 청주시내에서 깔끔하게 남북으로 종단하는 형태가 됐을 것이고 시가지 동쪽에 우암산이 버티고 있는 여건상 복선화도 어떻게든 시내를 통과하거나 오늘날 시가지가 확장된 가경동 지역으로 이설되는 선에서 마무리됐을 것이다.

또한 현도에서 경부선과 충북선의 연결 선로를 설치해 청주~대전 간 광역철도 사업이 활발하게 벌어졌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외부 요인에 의해 청주는 최적의 철도 노선은 번번이 무산되고, 애매한 철도망만 건설된 흑역사만 남아 있다. 이런 역사로 인해 청주시민의 철도에 대한 사랑과 염원은 더욱 절실해져갔고, 그 결과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유치와 호남고속철도 분기를 이뤄내는 성과를 가져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경부·호남고속철도를 충북선을 통해 강원권과 연결하는 X축 논리는 수요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말도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국토의 균형 발전 측면에서 이를 대체할 논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모든 교통시설을 수요의 관점, 경제성 논리로만 접근한다면 수도권 이외 지역에 타당성이 있게 나오는 시설이 얼마나 될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오송 유치 과정에서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로 대변되는 지역 이기주의적 발상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청주 오송’은 이미 철도의 중심이 됐고,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실질적인 관문역이라는 사실이다.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자돼 구축된 국가 기반 시설인 고속철도와 그 고속철도망의 중심인 ‘청주 오송’은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중요한 자산이다. 비록 현재 부족한 점도 많고 문제점도 많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문제점을 극복해 국가 철도망의 중심으로 육성해야만 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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