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그 생각을 미처 못했구먼.”

말뚝배기가 촌로 쪽을 보며 말했다.

“들통 나면 어쩔겨?”

쇠살주가 몰아세웠다.

“…….”

말뚝배기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까는 왜 고집통머리를 부렸던 거냐?”

이번에는 쇠살주가 좀 전에 있었던 갓쟁이와의 흥정을 꼬투리 잡았다.

“그 갓쟁이 순 맹물이여. 보졌다고 속여 백 쉰 냥에 팔아도 넘어갈 놈이여!”

“왜?”

“누렁이 앞이빨 닳은 걸 보구도 다섭이라고 속으니 맹추 아녀? 소를 사러온 놈이 소 이빨부터 봐야지, 소 이빨 볼 줄도 모르는 놈이 소를 사러 와가지고 한다는 짓거리가, 쯧쯧쯔!”

말뚝배기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나도 아까 그 갓쟁이가 누렁이 눈빛이 어쩌구, 가죽 탄력이 저쩌구할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속여먹으려다 임자 제대로 만나 치도곤 맞는구나 했지.”

쇠살주가 생각만 해도 떨리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자는 무슨. 어디서 설 듣고 와 속지 않으려고 먼저 잔머리 굴린 거지. 모르면 모른다고 차라리 알아서 해달라고 맡기던지 괜히 아는 척을 해 더 덩택이만 쓴 것 아녀?”

“그래서 홈빡 뒤집어씌우려고 그랬구먼. 말뚝배기 그만두고 쇠살주 해도 되겠구먼!”

“쇠살주는 무슨! 내가 이제껏 망나니처럼 살았지만, 내 분수는 알어. 내겐 말뚝배기가 딱이여!”

“이젠 점점 이 짓도 못해먹겠어. 흥정을 할 때마다 조마조마 참새가슴처럼 조이니…….”

“그래서 하는 소리여. 남 속여먹으려고 가슴 조리느니 차라리 말뚝 탕탕 박아주고 땡전 몇 닢 얻어먹는 게 뱃속 편해. 그러다 오늘처럼 눈먼 놈 만나 횡재도 이따금 하구.”

“그러나저러나 누렁이 주인하고 갓쟁이하고 무슨 말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네.”

쇠살주는 걱정이 자못 되는가보다.

“그러게.”

말뚝배기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촌로와 누렁이 쪽을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고 하는 양을 지켜봤다. 촌로가 누렁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보였다. 누렁이도 반가운지 꼬리를 철썩거리며 고갯짓을 했다. 그러나 갓쟁이가 이내 누렁이 고삐를 당겼다. 누렁이가 가지 않으려고 앞다리로 버티는 것 같았다. 촌로가 누렁이 엉덩이를 다독거리며 밀었다. 누렁이가 ‘우어우어’울며 우시장을 빠져나갔다. 한참동안이나 촌로가 누렁이를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래도 도살장으로 직행 안하고 일소로 팔려간 것을 다행으로 아슈! ”

촌로가 돌아오자 말뚝배기가 말했다.

“그야 다행이지만서두 생구인데 서운해서…….”

촌로에게 누렁이는 한식구였다. 젖도 덜 떨어진 것을 업어다 미움을 먹여가며 키운 놈이었다. 웬만큼 커서도 식전에 일어나면 그놈 여물부터 챙겼다. 들에 나갔다가도 누렁이가 좋아하는 풀이 있으면 그것부터 베어 지게에 묶어놓고 일을 했다. 그런 공을 알기라도 하는지 누렁이도 꾀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일을 해주었다. 그 덕에 살림 형편도 많이 나아졌다. 누렁이가 복덩이였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공을 모르면 도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누렁이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한집안에서 같이 데리고 살 작정이었다. 그런데 아들 혼사를 치루려니 집에서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재산은 누렁이뿐이었다. 누렁이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 촌로는 가슴이 자꾸만 아렸다. 촌로의 눈이 불그죽죽해져있었다.

“소 팔자가 다 그러니 워쩌유. 그래도 누렁이 대신 송아치가 가니 외양간이 덜 허전하겠수다. 그래, 맘에 드는 송아치는 봐두셨수까?”

“얼마를 달라고 하던가유?”

“스물 닷 냥을 달라고 하우다.”

“어디 한번 가봅시다.”

세 사람이 한패가 되어 촌로를 따라갔다.

“이 송아치우다.”

“영감이 쇠주슈. 얼마나 됐슈?”

촌로가 송아지를 가리키자 쇠살주가 곰방대를 물고 뻐끔거리던 영감에게 물었다.

“한 해 좀 넘었수.”

“아직 젖니뿐인 걸 보니 그런 것 같구만.”

쇠살주가 송아지 입술을 까집으며 말했다.

“지 어미 애비를 닮아 송아지는 참 좋수.”

“내가 송아지 어미 애비까지 알 필요는 없고, 얼마면 되겠슈?”

“스물 닷 냥 아래로는 절대 팔 수 없소.”

영감이 촌로의 얼굴을 한 번 힐끔 보더니 쇠살주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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