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청주강내도서관 사서

요 몇 년 동안 인문학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곳곳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연과 끊임없이 출판되는 인문학 주제의 책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이 다루는 주제 또한 다양하다. 철학·고전·역사와 같이 일반적으로 인문학과 연관되는 주제는 물론, 음식·미용·로봇처럼 ‘이런 주제도 인문학이랑 관련이 있나?’ 싶은 주제까지 폭넓은 분야를 두루 다룬다.

특히 인문학과 자주 연결되는 키워드는 ‘치유’와 ‘힐링’이다.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교양 지식을 쌓고 ‘힐링’하면서 무미건조한 회색의 일상을 벗어나 문화를 즐기는 인간다운 삶을 꿈꾼다. 그런데 인문학의 역할은 과연 이것뿐일까? 개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지면 전부인 걸까?

‘정의를 위하여’는 현대 인문학의 요소 중 하나인 비판적 사유와 이에 따라오는 비판적 저항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최근 지속되는 인문학 열풍이 사회와 맥락을 벗어나 탈정치적·탈역사적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인문학은 단순한 문화 활동이 아닌,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구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저항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항을 통해 세계를 바꾼다니, 갑자기 커지는 얘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내 한 몸 두기에도 험한 이 세상을 책 좀 읽고 강연 몇 번 들었을 뿐인 내가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겠는가? 저자는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계속해 질문을 던져 가르치던 청년들을 비판적 사유의 세계로 이끌었고, 결국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현상유지를 원하던 자들에게 사형을 당했다. 이처럼 새로운 물음과 비판적 사고는 기존 체제에 의문을 던지고, 세계에 개입하게 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는 비판적 저항을 크게 정치적·사회적·종교적·윤리적 저항으로 나누고, 각각의 키워드에 따라 근래 일어난 사건·사고와 화제들을 주제로 현실 세계를 성찰한다. 세월호, 여성혐오, 크림빵 뺑소니 사건부터 헬조선, 미생, 성소수자까지 갖가지 주제를 바라본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불편함이 올라온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악마화 해 내면에 구현하지 않았는가? ‘개천에서 용 난다’면서 ‘개천’을 벗어나야 할 곳으로 여기지는 않았는가? 비판적 문제 제기 대신 원색적 혐오를 들이밀지 않았던가?

책을 덮고, 이제껏 안락함에 길들어 눈치채지 못했던 불편함을 상기해보자. 조금 더 넓어진 시야로 세계를 바라보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의문을 품어보자. 불편함을 인식하는 순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이 보일 것이다.

또한 세상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다 보면,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과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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