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올시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갓쟁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점점 솔깃해졌다.

“생원님, 이 누렁이를 관상 좀 보시우. 탄탄한 뿔은 양쪽으로 구부러져 부채살 같고, 이마는 넓고, 콧대는 길게 뻗어 뺨이 복스럽고, 귀는 애기 손바닥 같이 이쁘고, 왕방울 눈과 코는 머루처럼 쌔까만 것이 사람으로 났으면 양귀비 뺨 칠 상 아니우? 또 허리는 어떻슈. 저 모가지부터 엉덩짝까지 늘씬하게 뻗어 날렵한 것이 약빠르게 뵈지 않는가유?”

쇠살주가 갓쟁이의 속을 들여다보고는 때를 늦추지 않고 몰아붙였다.

“유곽에 기생으로 보낼 거요? 소가 낯짝 이쁘고 몸매 늘씬하면 뭐하겠소. 모름지기 일소는 모가지는 두둑하고, 허리는 두루뭉실해야 힘이 있어 일을 잘할 텐데 어째 부실해 보이는 것이 땅이나 제대로 갈라나 모르겄네!”

갓장수도 지지 않고 흠을 잡았다. 어떻게라도 트집을 잡아 소를 싸게 사려는 속셈이었다.

“어허 생원님, 그건 생원님이 모르는 말씀이오. 요즘은 날씬하고 이쁜 것들이 일도 잘 한다우. 두둑하고, 퉁퉁한 것들은 골통만 부리고 병도 많소.”

“소가 발목이 굵어야 발목이 굵어야 쟁기질을 기운차게 할 텐데 이 놈은 발목이 채까치처럼 가늘어 뭔 일을 하겠어. 워째 영…….”

“생원님, 천리말 보셨쥬? 허리는 잘룩하고 다리는 또 얼마나 늘씬합디까. 발목은 또 어떻구요. 발목이 생원님 말처럼 채까치처럼 가늘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잖슈. 그런게 명마고, 그러니 하루에 천리를 뛰는 것입죠.”

“그건 말 얘기지, 소  타고 천리 길 갈 일 있소?”

“생원님도 우스갯소리가 넘치시는구먼유. 일하는 소가 천리 갈 일이 뭐 있겠슈. 글구 이 누렁이 발목이 채까치 같다니 이렇게 굵은 채까치가 어디 있단 말씀이오? 이 다리에 밟히면 거북이 등짝도 ‘쩌억’갈라지겠습니다요! ”

쇠살주가 허리를 구부려 누렁이 다리를 손 줄로 쟀다.

“이보시오 쇠살주, 거기가 종아리지 발목이오?”

“종아리나 발목이나 거기가 다 이웃간이지 뭐가 다르겠습니까? 이보시오 쇠주 양반, 생원님한테 이 누렁이가 앞발로 차서 호랭이 잡은 얘기 좀 해주시구려.”

쇠살주가 누렁이 종아리를 둘렀던 손 줄을 풀며 말뚝배기에게 말했다.

“아무리 내 소를 팔아주려고 한다 해도 쇠살주 뻥이 너무 심하네. 호랑이를 잡은 게 아니고 호랑이를 쫓은 것이여. 그리고 소가 어떻게 앞발로 차, 뒷발로 차지.”

“앞발이거나 뒷발이거나 아무 발로나 차서 쫓았으면 되지 그걸 갖고 뭘 그러슈. 안 그러유 생원님?”

쇠살주가 과장되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갓쟁이에게 동의를 구했다.

“아무리 흥정을 해먹고 산다지만, 없는 얘기는 말아야지. 그래도 쇠주인은 보기와는 달리 진실한 양반이구먼. 뭔 얘기인지 들어나 봅시다!”

갓쟁이가 우락부락한 말뚝배기는 믿음이 가는 눈치였다.

“내가 누렁이를 끌고 큰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호랑이를 만났던 얘기요. 이 누렁이 아니면 난 벌써 호랑이 밥이 되었을 거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말뚝배기는 평생 제 힘으로 일을 해서 벌어먹은 적이 없는 난봉꾼이었다. 내창 장터 토박이로 어려서부터 하릴없이 장바닥을 돌아치며 맥장꾼 짓거리, 시비꾼, 난전에서 여리꾼, 야바위판에 바람잽이, 서리꾼, 파장이 되면 장꾼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해주는 뒷배꾼을 하다 우시장에서 말뚝을 박아주고 돈을 받는 지금의 말뚝배기가 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소를 가지고 나무를 하러다녔을 리 만무했다. 나무를 하러간 적이 없으니 큰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제 얘기가 아니었다. 장마당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제 얘기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러니까 저 누렁이가 뒷발로 차서 범이 도망을 갔다는 얘기 아니오?”

“그렇소. 우리 누렁이 아니면 난 이미 오래전에 대문간에 사잣밥을 떠놓은 팔자가 됐을 거요. 사잣밥 면한 것은 다 누렁이 발목 심 덕분 아니겠소. 그러니 발목 굵다고 상수는 아니지.”

“소를 한 번 걸려보시오.”

갓쟁이가 말뚝배기에게 누렁이를 걸려보라고 했다.

“이랴! 이랴!

말뚝배기가 고삐를 풀며 누렁이를 이리저리 걸렸다. “엉덩이가 토실토실 찰져야 새끼도 쑥쑥 나고 하는데 외 꽁다리마냥 저렇게 빼쪽해서야 뭘 낳지도 못하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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