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진 대전시민대학 강사

최근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대전보훈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경색이 발병해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 처음 가면 모든 게 낯설기만 한데,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환자 입원수속과 진단에 필요한 각종 검사 등 때문에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환자의 보호자인 나는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모시고 MRI를 촬영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버님을 의료용 이동 베드에 눕히고 영상의학과를 찾아가 절차를 밟으려하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간호사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저희가 안내해 드릴테니 걱정하지마세요”라고 말하며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잠시 후 건장한 청년이 다가와 싱긋 웃으면서 “어려우시지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하고 선뜻 나서는 게 아닌가. 순간 ‘뇌경색 환자를 돌보는데 여성 간호사에게 힘에 벅찰 수 있으니까 남성 간호사가 대신 왔나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는 능숙하게 환자를 이동용 베드에 옮겨 눕히고 여러개의 수액주사 세트를 추스리더니 “보호자분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하고는 베드를 밀고 앞장섰다.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을 바꾸고 옆 건물로 이동해 영상의학과에 도착했다.

나는 그 친절함이 고맙기도 하고 자신의 직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모습이 대견하여 그 청년의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가슴에 달고 있는 명찰에는 분명히 ‘사회복무요원 ㅇㅇㅇ’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2016년도에 충북 보은군에 있는 ‘사회복무연수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을 대상으로 1년 간 강의를 한 적이 있어 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매우 반가운 마음에 ‘환자를 돌보는 일이 힘들지 않은지, 그리고 사회복무연수센터에서 교육받은 적이 있는지’를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는 힘들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환자를 돌보고 있으며, 올해 3월 연수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사회복무연수센터를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며, 교육은 어떠했냐고 재차 질문했다. 그 청년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재미있었고, 연수센터의 시설과 급식 등 교육환경이 너무 좋아 4박 5일 보다 길게 교육을 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사회복무를 해야 하니까 시간만 때우자 하는 마음으로 복무를 시작했다고 속내를 보였다. 교육을 수료한 후 사회에 봉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누군가를 돕는 것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말은 남기고 자리를 떴다. 교육훈련이라면 누구든지 수동적이고 시간 때우기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강사로 활동했던 사회복무연수센터의 교육훈련이 실제로 한 젊은이에게 그런 긍정적 메시지를 주었다는 데 강사로서 보람을 느꼈다. 보훈병원에서지만 괜찮은 젊은이를 만난 것 같아 흐뭇한 마음으로 아버님을 돌봐드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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