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촌로는 애가 탔다. 우시장에 있는 다른 쇠살주들도 촌로의 누렁이를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흥정을 걸어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촌로도 점점 지쳐갔다. 전 장에 비해 소 값이 많이 떨어졌다는데 혹여 자신이 물정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쇠살주가 다시 오면 소 값을 깎아서라도 누렁이를 팔아달라고 매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때 피전 쪽에서 쇠살주와 말뚝배기가 어슬렁대고 있었다.

“이보시오!”

촌로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두 사람은 촌로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외면을 했다. 분명 소리쳐 부르는 촌로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못들은 척 딴전을 피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저들이 자신 때문에 심정이 상한 것은 아닐까. 촌로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들이 자신의 누렁이를 흥정해주지 않는다면 촌로로서는 내창장에서 누렁이를 팔 수 있는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을 코앞에 두고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천지가 개벽을 해도 이번 장에 처분을 해야만 아들놈 장가를 보낼 수 있었다.

“쇠살주! 쇠살주!”

촌로가 다급한 마음에 연거푸 쇠살주를 불렀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쇠살주가 촌로 쪽을 바라다만 볼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쇠살주 양반, 이리 좀 와보시오!”

촌로가 쇠살주를 향해 급하게 손짓을 했다. 그제야 쇠살주와 말뚝배기가 촌로 쪽으로 향했다. 촌로의 타는 마음과는 달리 두 사람은 느릿느릿 갈지자걸음을 하며 어정어정 다가왔다.

“왜 그러슈?”

쇠살주가 촌로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시큰둥하게 물었다.

“우리 누렁이를 좀 서둘러 주시우다.”

“글쎄, 그 금에는 조선 팔도 어딜 가도 흥정이 안 된다니까!”

쇠살주가 어림도 없다는 듯 잘라 말했다.

“그러지 말고 어떻게든 흥정을 좀 붙여주시우다!”

“영감 그럼 금을 낮추겠다는 얘기요?”

말뚝배기가 촌로의 의중을 확인했다.

“금을 낮출 테니 알아서 팔아주시우다.”

“노인장, 흥정 다했는데 나중에 가타부타 딴 소리 하기 없기요!”

쇠살주가 촌로를 겁박하며 다짐을 받았다.

“영감, 쇠 금이 아침보다도 점심나절에 더 떨어졌수다. 점점 더 떨어질 텐데 더 떨어지기 전에 잘 한 일이우다.”

말뚝배기가 촌로의 말투를 흉내 내며 쇠살주 편을 거들고 나섰다.

“알았으니 빨리만 팔아주시우.”

촌로가 모든 것은 쇠살주에게 맡길 테니 팔아주기만 하라고 했다.

“이왕 그럴 걸, 왜 뜸은 들여 사람 진을 뺍니까?”

쇠살주가 ‘그러면 그렇지 촌 늙은이가 별 수 있겠어’하는 표정으로 핀잔을 주었다.

“미안하우다!”

촌로가 사과를 했다.

“이봐, 말뚝이! 이 누렁이 막졌다고 했지?”

쇠살주가 말뚝배기에게 물었다.

“영감이 아침나절에 여덟이라고 했으니까 막진 거지.”

말뚝배기가 촌로에게 들은 누렁이 묵은 햇수를 말했다. ‘막졌다는 말은 여섯 살이 넘은 나이 먹은 소들을 말하는 것으로 우시장에서 장사꾼들 사이에 쓰는 은어였다. 누렁이는 여덟 해를 묵었으니 소 나이로는 늙은 축에 속했다. 우시장에서 소 나이를 중하게 따지는 것은 소 값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경우에 따라 사정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소 값은 한 해 상간에도 많은 차이가 났다. 일단 어린 소가 비쌌다. 당연히 어린데다 일을 잘하는 소는 더 비쌌다. 소는 일소와 고깃소로 나뉘는데 나이가 들어 노동력이 떨어지는 소는 무게를 달아 고기로 팔려나가기 때문에 일소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그러니 우시장에서는 팔고 사려는 사람 사이에 속이고 속지 않으려는 눈치싸움이 대단했다.

“노인장, 지금부터 매주를 물색해볼 테니 절대로 막졌다는 말은 하지마슈! 이 누렁이는 노인장이 하도 잘 거둬 먹여 나릅이나 다섭이라고 해도 믿겠소이다. 그래도 나릅은 너무 하고 다섭이 쯤 됐다고 할 테니 나만 믿고 암맛두 마슈”

‘나릅’은 네 살이고, ‘다섭’은 다섯 살을 말하는 것이었다. 쇠살주는 여덟 살인 누렁이를 삼년이나 줄여 다섯 살로 속여 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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