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며칠 전 아직 두 돌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은 어린 손주가 제 엄마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분명 어떤 목적을 가지고 터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손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흙이나 돌멩이, 근처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한 놀이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어린 아기들까지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60년대 중반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아버지께서 선진국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미국에는 텔레비전이라는 게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 작은 상자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소리까지 난다는 그 물건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작은 상자에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필자가 살던 시골인 우리 동네에도 텔레비전이 나타났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을 설치한 한 부잣집에 동네 사람들이 거의 매일 모여 호기심에 찬 눈으로 지켜보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안방을 떡하니 차지하던 가구 중의 하나였던 텔레비전은 이젠 간편한 벽걸이로 바뀌었고, 화면도 마치 자연 그대로를 보듯 선명해졌다.

어디 텔레비전뿐일까? 이렇게 현재진행형으로 무섭게 변하는 세상에서 어린 아기를 보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미래사회가 궁금해진다. 지금 두 세 살인 이 어린 아이들이 필자의 나이쯤 되면 과연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30년 뒤, 50년 뒤엔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질 것인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그리고 과연 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의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과연 자라나는 세대들을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옳고 바른 길인가? 미래를 내다보고 과학문물을 앞서 끌고 나가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경우 특히나 보육교육을 포함해 유·초·중등 교육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미래를 선도해 나가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보통교육에서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실력배양이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두루 갖춘 융합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야 하고, 미래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과학기술 교육은 분명 우리의 미래사회를 이끌 디딤돌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고 교육의 방법에 대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인문 소양교육 역시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 단순한 기술의 발전만으로 미래를 선도할 수 없음은 당연할 것이다. 뛰어난 상상력은 인문학 및 예체능 교육을 통해 길러 질 수 있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적 상상력 역시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법인에 인격을 부여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에게도 인격을 부여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만할 것은 바로 윤리 교육이다.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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