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관아에 넘겨 네 놈이 치도곤 당하는 것을 볼 테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시오! 그러면 형씨가 원하는 대로 뭐든 다 들어주리다!”

말감고가 머리를 조아리며 배금식에게 싹싹 빌었다.

“뭘 어떻게 해주겠다는 거냐?”

“뭐든…….”

말감고가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며 배금식 눈치를 보았다.

“에이, 다 끝났구먼.”

“그만 갑시다.”

구경꾼들이 두 사람의 하는 양을 보며 말했다.

“끝까지 보지 않고 왜들 그냥 가는가요?”

 풍원이가 흩어지는 구경꾼들에게 물었다.

“잘못했다고 빌면 끝난 거지 뭘 더 볼게 있겠냐?”

“말감고가 잡혀가야 끝나는 게 아닌가요?”

“처음에야 감정이 나서 그랬겠지만, 부모를 죽인 원수도 아니고 피차 힘들게 사는 사람들끼리 관아에 고발하면 뭘 하겠냐. 서로 좋게 해결해야지.”

풍원이는 구경꾼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드시 결판을 내야만 싸움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또 상대가 아무리 잘못을 했더라도 용서를 빌면 화를 풀고 받아주는 아량도 베풀어야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 무엇보다도 먼저 속이지 않고 올바르게 거래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꾼과 말감고와의 싸움은 속이려다 들통이 나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까지 전에서 앉은장사만 해온 풍원이는 향시에서 일어나는 속임수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풍원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온갖 술수가 장마당에는 무수히 떠돌아다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싸움을 줄이고 원만한 거래를 하려면 속지 않는 길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속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막막하기만 했다.

풍원이가 곡물전에서의 싸움구경을 끝내고 다시 내창장에는 어떤 물산들이 많이 나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장마당을 돌아다녔다. 내창장에는 쌀 그리고 보리·조·콩 같은 잡곡, 무명·삼베·명주 같은 직물, 닭·염소·돼지 같은 가축 중에서도 특히 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풍원이는 우시장을 기웃거렸다. 우시장 근처에는 작은 가축들 장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우시장은 덩치가 큰 짐승을 거래하는 곳이라 그런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이보 영감, 귓구멍에 말뚝 처박았나 왜 말을 안 듣는 겨?”

볼태기와 목덜미에 살이 터질 듯 오목조목 붙어 모가지가 하나도 없는 우락부락한 말뚝배기가 저보다도 한참 연배 보이는 촌로에게 반말로 소리쳤다. 말뚝배기의 체구는 보기만 해도 기가 꺾일 정도로 당당했다. 말뚝배기나 식식거리며 땅을 파헤치는 황소나 그놈이 그놈처럼 보였다.

“말뚝배기 양반, 잘 좀 부탁하우다.”

촌로가 절절매며 통통하게 살이 올라 반지르르한 누렁이를 끌고 왔다. 누렁이도 주인을 닮았는지 눈만 봐도 순한 티가 역력했다.

“여기다 매슈!”

말뚝배기가 우시장 한쪽 구석진 곳에 말뚝을 도끼뿔로 거칠게 때려 박으며 고압적으로 말했다.

“저쪽에다 말뚝을 박아주면 안 될까?”

사람들이 붐비는 우시장 입구 쪽을 가리키며 촌로가 말뚝배기 눈치를 살폈다.

“뭐여!”

 그렇잖아도 사나운 인상이 눈을 치켜뜨자 목도둑놈 같은 낯짝이 볼만했다.

“일이 잘 성사되면 섭섭잖게 후사하리다.”

촌로가 손을 비비며 굽실굽실거렸다.

“그래 뭘 하실라나?”

눈을 휘번득거리며 촌로를 쥐 잡듯 하던 말뚝배기가 후사를 하겠다는 말에 금방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멍애소를 개비해볼까 하우다.”

“얼마나 됐소?”

“여섯 해 째요.”

“그럼 길도 잘 들었겠네!”

“지가 알아 척척 잘 하우다.”

“그런 멍애소를 왜 끌고 나왔슈? 모 철이 끝나 일이 뜸하기는 하겠지만, 가을 되면 짐바리가 필요하지 않겠슈? 저렇게 길이 잘 들여진 멍애소라면 장정 서너 몫 일은 너끈할 텐데.”

말뚝배기가 짐짓 촌로를 걱정하는 양 보였다.

“큰놈 혼사가 있는데, 촌 바닥에서 돈 만들 일이 뭐 있겠소. 서운하지만 저놈과 송아지로 개비하고 냉거지로 잔치를 해봐야지…….”

누렁이를 쳐다보는 촌로의 주름진 얼굴에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그대로 박혀있었다.

“내가 쇠살주에게 잘 말해보겠수다. 저리로 옮깁시다!”

말뚝배기가 선심 쓰듯 말했다. 그러더니 황소 뒷발질 하듯 말뚝에 발길질을 하더니 말뚝을 쑥 뽑아들었다.

말뚝배기가 촌로를 데리고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우시장 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