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Hans-Dietrich Genscher)는 18년간의 독일 외교장관을 지냈고, 동서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불리고 있다. 겐셔 장관이 사임을 발표하자 마르크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등 전 유럽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미국의 경우는 한번 장관에 임명되면 임명권자와 임기를 같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평균 임기가 35개월 정도 된다. 오바마는 그의 대선 라이벌이었던 클린턴을 임명해 4년을 함께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장관의 평균 임기는 13.86월에 불과하다. 김대중 정부 때는 평균 11개월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안동수 법무부 장관은 43시간 장관직을 보유했다. 장관으로 한 달을 넘기지 못한 사람을 한 손만으로 꼽을 수 없다.

경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9년간 39명이 교체되어 평균 임기가 1년이 되지 않는다. 국가 예산이 계획, 집행, 결산에 이르기까지 3년여가 걸리는 데 이 예산 주기를 한번 거친 장관이 없다.

우리의 장관 임기는 때론 파리목숨에 비교하기도 한다. 한 나라의 교육부 장관이 대입학력고사문제지 도난사건의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임기제인 검찰총장도 정권이 바뀌면 사표 형식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이후로 장관의 임기가 조금은 늘어나고 있지만, 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짧다.

지금 이러한 장관 임명과 관련하여 국가가 시끄럽고, 정치권이 난리다. 야당은 스스로 설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협치가 끝났다고 한다. 반면에 청와대는 인사권은 청와대의 고유 권한으로 국민의 뜻과 법대로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해 초기의 긍정적 소리에 엽관제, 정실 임용 등 비난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국회의원 장관 발탁이 많고, 정권 창출 과정에 함께한 사람 중심으로 추천하는 듯하니 그러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장관 등의 정무직은 본래 코드 인사를 위한 제도이고, 코드 인사를 위한 정실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로 도입됐다.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부처 경험이나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보은 인사 차원에서 추천하는 것은 정실주의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의 통계를 보면 다선 의원이 장관으로 임명될수록 장관 임기는 짧아지고, 관련 분야에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임기가 짧아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제도적으로 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장관의 임기를 짧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임용권자의 인사 철학이 일할 사람보다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복종형 인간이나 보은 인사를 한다면 13개월 장관은 사라지지 않고, 인사청문회는 반복해서 갈등의 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