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한동안 뉴스의 첫 부분을 장식하던 미세먼지가 어느덧 잠잠해져 가니, 이민이라도 가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인 냥 가물거리게 되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이제는 더위와 가뭄이 뉴스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기록적인 가뭄은 어쩌면 일상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의례 찾아오던 6~7월의 장마는 잠깐의 단비만 뿌리고 가을 뒤 쪽으로 물러나 있다. 가뭄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가뭄을 해결해야 할까? 우리는 고민한다.

마야의 시대에도 가뭄은 있었고, 약 208년을 주기로 반복적으로 발생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그 가뭄주기를 무사히 또는 점점 더 어렵게 견디어 오다가 어느 한계에 도달했을 때 폭발적으로 붕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반복적인 가뭄이 견디기 힘들어 붕괴의 문턱을 넘어선 후 완전히 붕괴하는 시기까지의 기간이 약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그 동안 마야인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뭄으로 붕괴의 위기에 처했던 또 다른 사례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이웃 일본이었다. 평화와 번영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에서는 나무로 만든 목조 건축이 번창하게 되었다. 지역의 성주들은 자신들의 힘의 크기를 자랑하는 수단으로 커다란 목조 사원과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커다란 화재가 발생해서 10만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고, 목재를 이용한 난방과 요리, 소금, 타일, 도자기를 생산하면서 삼림은 더욱 파괴됐다. 삼림의 파괴는 홍수로 인한 피해를 가져왔고, 빠르게 빠져나간 빗물은 하천의 물을 적게 만들어 가뭄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식량의 생산량은 줄어들었고, 식량사태가 매년 발생하였다. 마야문명처럼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일본은, 다행히 17세기 중반에 접어들어서부터 지도자들이 삼림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쳤고, 이는 일본이 오늘날까지 번성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두 가지 오래된 세계사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아야 한다. 가뭄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다. 가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가뭄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을 것인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뉴스 첫 머리에서 심각한 가뭄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도시를 개발하고, 농지를 개간하며, 산업단지를 만들고, 물을 아끼지 않고 마구 사용한다. 지역의 정책은 산업단지, 도시개발, 농업증진에 필요한 용수공급 대책에만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 물을 가두어 가뭄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자고 하천을 막는 4대강 사업도 벌어졌다. 우리는 지금 역사 속에서 사라진 마야인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현명하게 대처한 일본인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후자 보다는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뭄의 대책은 어떻게 하면 물을 더 많이 공급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물을 더 많이 땅 속에 저장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개발을 위한 물 공급이 아니라 제한된 물 자원의 조건 안에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야인들이 100년 가까운 붕괴의 시간에도 대응하지 못한 까닭은 천 년이 훨씬 넘은 지금 우리에게도 똑 같이 존재하고 있다. 가뭄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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