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지난주 청주시가 문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자로 참석한 나는 지역 예술인의 현주소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시간도 없었지만, 문화도시란 개념이나 사업에 대해 아는 바도 부족했고 딱히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1985년 아테네에서 시행된 유럽문화수도의 개념은 2004년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시작됐다. 현재 광주를 포함해 부산, 전주, 경주, 공주, 부여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도시 사업은 지난 10년의 성과와 반성 그리고 지역문화진흥법 제4장(문화도시문화지구의 지정 및 지원)을 근거로 새로운 전환기를 맡고 있다. 전국에서 여러 시도가 문화도시로 지정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문화도시 지정 신청을 위해 2~3년간 준비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정 희망 2년 전까지 신청을 하는 시스템이다. 문화도시로 최종 지정되면 막대한 예산이 확보된다. 청주시도 문화도시 지정신청을 위해 문화기반구축사업, 문화시민 참여사업 등 올해로 2년째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청주시는 지난해 동아시아문화도시를 진행하면서 ‘생명문화도시청주’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문화는 인간이 무리를 이루면서 저절로 생겨난다. 문화가 없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을별로 마을의 고유한 문화가 있듯이, 청주도 청주만의 문화가 있다. 농촌은 농경, 자급자족, 두레 문화가 있듯이 도시는 산업, 자본, 소비문화가 존재한다. 단지 너무나 평범하고 특이성이 없어 고유의 문화가 되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런던, 비엔나, 파리, 베를린 등 유럽의 문화도시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다. 단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청주시는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나는 성장과 멈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문화도시는 사람을 포함한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나무를 베는 것이 아니라 심고 가꾸는 것, 자가용 이용을 줄이는 교통정책, 걷고 싶은 거리 조성, 파괴 논리의 개발이 아닌 보존과 이용의 논리, 인위적인 것을 줄이고 자연 그대로를 지키려는 정책 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모두는 자본의 논리를 역행하는 것이어서 개인적인 망상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연장, 도서관, 문화센터, 공원을 더 많이 조성한다고 해서 결코, 문화도시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또한, 문화의 한 주축인 예술, 예술가도 빼놓을 수 없다. 어쩌다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의 선택이 도시, 자본의 세계에서는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지역에서 대우해주지 않는다면 지역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의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문화도 허울뿐이다.

멈춤으로부터의 문화도시 조성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는 너무 깊이 자본주의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문화도시는 성장과 멈춤의 어느 지점을 관통하는지 모른다. 이처럼, 문화도시의 개념은 어렵다. 그럼에도, 이 어려운 일을 추진하고 있는 관계자께 찬사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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