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까 그 행상이 가져온 곡물은 중상품은 되는 좋은 축에 드는 쌀이다. 게다가 대소원은 충주 근방에서는 벌이 제일 넓은 곳으로 볕도 좋고 땅심도 좋아 거기서 생산되는 쌀은 이천 쌀 못지않단다.”

“그런데 어르신은 중에서도 가장 하품으로 사들이셨잖아요. 왜 그렇게 하셨지요?”

“진정 그걸 모른단 말이냐?”

“제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창고에 가서 상상품을 가지고 오라 했는데, 왜 특상품을 가져왔느냐? 네가 창고를 정리하며 물목마다 품질별로 꼬리표를 달아놓고 모른다하진 않겠지. 왜 그랬느냐?”

특상품은 전이나 향시에 내놓고 팔기보다는 관아의 행사가 있을 때 공납을 하거나 권문가들의 잔치가 있을 때 납품만 하는 상상품보다도 윗 질의 최고급 물산이었다. 그런 특별한 쌀을 풍원이가 모르고 가져왔을 리는 없었다.

“행상이 하도 밉살스러워 고랑탱이를 먹이려고 그랬습니다요.”

“하하하! 네 놈도 속 창알머리가 있기는 한가보다.”

우갑 노인이 풍원이의 속내를 간파하고 크게 웃었다.

“아까 행상이 절 놀려먹을 때는 어떻게 맞서야할지 생각도 나지 않고 속이 터져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풍원이가 특상품 쌀을 가져온 것은 최고의 질 상품을 보여줌으로써 행상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우갑 노인은 그것을 이용해 행상의 쌀을 후려친 것이었다. 

“의도야 어떻든 네가 특상품을 가져왔기 때문에 행상의 쌀은 등급이 떨어지고 돈도 깎이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 결국 네 덕분에 좋은 쌀을 싸게 사들일 수 있었던 것 아니냐. 실은 나도 그 행상 하는 꼴이 하도 가관이라 덩탱이를 씌운 것이다! 행상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물건도 싸게 들이고 속도 시원하구나.”

“그래도 행상에게는 미안하구먼요!”

풍원이는 행상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끝난 일은 빨리 접거라. 연연하면 할 일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리고 혀 밑에 도끼가 들었다. 말 한 마디로 죽고 살 수도 있다. 그러니 웬만하면 상대의 마음을 거슬리는 말은 삼가 거라. 행상은 제 혀로 제 몸에 흠집을 낸 것이다!”

우갑 노인이 풍원이에게 사람들을 대할 때 어찌해야하는 지를 각별하게 일렀다.

“네! 그런데 목계에 한양 미곡이 내려온다는 말은 뭔가요?”

“그건 내가 지어낸 말이다.”

“그러면 거짓말 아닌가요?”

“거짓이 아니라 상술이지.”

“아무리 상술이라 하더라도 없는 말을 꾸며내는 것은 문제 아닌가요?”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무슨 상술인들 못 쓰겠냐?

“목계에 내려오지도 않는 쌀이 내려온다고 한 것과 상술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요?”

“밀어붙일 때는 확실하게 밀어붙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튀어 오르거든. 조금이라도 약한 꼴을 보이면 이 바닥에서는 먹힌다. 한양에서 쌀이 대량으로 내려오면 물량이 풍부해져 당연히 쌀값이 떨어진다는 것을 행상도 알았을 테니 우선 기가 꺾였고, 자기가 장사를 하며 맞바꾼 쌀이 최고의 상품인 줄 알고 자신만만해하다 네가 가져온 특상품 쌀을 보자 또 기가 꺾여 대거리할 생각도 못하고 수그리해진 것 아니겠느냐?”

“그러다 행상이 속을 것을 알고 나중에라도 찾아와 행패를 부리면 어떻게 하나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구냐? 무슨 수를 쓰든 흥정은 일단 성사를 시켜야 한다. 그것도 일단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나중은 없다. 흥정이 끝난 문제를 다시 왈가불가하지도 않겠지만 혹여 한다고 해도 그때는 그랬다면 끝나는 문제다. 세상에 확실한 것이 뭐가 있겠느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장마당에서 확실한 것은 지금이다.”

풍원이는 우갑 노인의 말을 들으면서도 행상을 속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람들은 제 애비도 속이는 것이 장사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장사는 속이는 것이 아니라 속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속지 말아야지!”

“예?”

우갑 노인의 간단한 답에 풍원이는 그 뜻을 알지 못해 궁금증만 더해졌다.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무슨 답이 있겠느냐? 이제껏 파는 것만 배웠으니, 이제는 사는 것도 배워보도록 하거라!” 풍원이의 궁금증에 대한 답 대신 우갑 노인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러나 우갑 노인이 하는 일에는 반드시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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