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국립청주박물관 자원봉사회

더위가 정점에 서 있다.

쏟아붓는 햇살을 피할 손 한 뼘 만한 그늘이라도 있으면 찾아다닐 정도이니 말이다. 집 안에 있는 ‘바람을 일으킬 만한 물건’은 총출동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내뿜는 찬바람을 너무 쐬다보니 목이 알싸하고 기침이 난다. 이럴 때는 부채바람이 제격이다 싶어 서랍 속에서 찾았더니 죄다 회사에서 준 홍보용 부채만 가득하다. 앞 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대청마루에 할머니가 부쳐주던 정취어린 부채는 다 어디갔나.

부채가 우리 삶과 함께 한 지는 오래된 듯 싶다.

우리나라 부채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견훤에게 일길랑 민극이라는 사람이 공작선과 대나무화살을 선물로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 서긍이 저술한 ‘고려도경’을 보면 부채가 등장한다.

“대를 엮어 뼈대로 만든 흰 쥘 부채, 여기에 은이나 동의 못으로 장식을 하기도 하고 심부름할 때나 많이 움직이는 사람들은 옷소매 속에 넣고 다니는데 퍽 편리해 보인다. 그리고 고려의 소나무 부채가 있는데 소나무를 가늘게 깎아 줄을 만들고 그것을 실로 만들고 짜낸 것이다.

부채에 달이나 별, 은하수 구름의 기운, 꽃무늬를 그려 기교를 부렸다. 임금이 사절단에게 주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후 소나무 부채는 인기를 더 해 고려특산품이자 고려의 명품이 됐다.

고대 중국의 순임금은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구하고자 추천한 사람에게 오명선을 만들어 선물했으니 훗날까지도 부채는 아주 의미있는 선물였다. 조선시대에 궁중에서도 단오절을 맞이해 비단에 시나 그림을 그려 신하에게 나눠주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부채는 더욱 유행했다.

초기 부채가 만들어질 때는 실용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지만 고려시대에 오면서 부채면에 글씨나 그림을 그려 장식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층의 감상용으로 그려지고 장식됐다. 산수, 인물, 꽃과 새, 날짐승과 길짐승 등 그림소재는 다양하다. 감상용의 소장품들은 현재까지 보존됐다. 조선시대 이전의 작품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삼복더위에 마음을 시원스레 적셔 줄 시구, 산하가 그려진 부채 한 점 있다면 잠시나마 더위도 잊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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