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바위 옆으로 난 계단을 밟아 성으로 올라간다. 이상스럽게 줄어드는 계단이 아깝다. 이 순간도 성벽과 마주섰을 때만큼 긴장한다. 이런 엷은 기대감과 긴장감이 나를 자꾸 성으로 불러낸다. 더구나 여기 남문을 지나면 커다란 사랑나무가 있다니 오늘은 더욱 설렌다.

계단 돌 틈에 노란 양지꽃이 피고 아기별꽃이 하얗게 피었다. 이 성을 공격하다가 또는 달려드는 적을 방어하다가 여기서 죽은 이들의 피가 노랗게 하얗게 피어난 것인가. 그들의 아픈 넋이 하얗게 피어난 것인가? 큰 바위에 올라섰다. 남문지 성벽 위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수문장이 되어 서있다. 돌아보니 임천면 소재지는 물론이고 멀리 강경들에 비닐하우스와 생동하는 들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금강의 모습이 빛을 받아 기다란 비단을 널어놓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다.

성벽을 보자 허겁지겁 서쪽 성벽으로 내려갔다. 최근에 복원공사를 하면서 성벽 아래로 공사장비가 드나든 흔적이 남아 있다. 잡초도 잡목도 없어 다니기 좋았다. 서쪽으로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성벽이 잘 복원되어 있었다. 산의 모양이나 경사를 잘 이용하여 성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쌓았다. 서벽은 편축식 축성법으로 밖은 돌로 쌓고 안은 흙으로 메우는 방식을 택했다.

성벽으로 달려드는 적에게 성안에서 바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은 성벽 아래 평지가 없어 비탈을 올라와서 바로 성벽에 붙어야 하므로 공격 장비도 놓을 수 없고 공격과 후퇴를 마음 놓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나라 장수 유인궤도 공격을 꺼려했는지도 모른다. 사비에서 10~15km 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금강어구와 부여의 남서부를 지키는 요새이기 때문에 동성왕이 고위직에 있는 백가를 파견했을 것이다.

복원한 부분도 성석은 단단한 화강암 소재로 본래의 성벽의 바른층쌓기 모양을 본떴다. 그런데 이곳의 무너진 성돌을 모아 쌓지 않고 새로 들여와 다듬어 쓴 흔적이 있다. 옛것은 돌을 정으로 다듬어 정교하지 않은데 새로 쌓은 부분의 돌은 칼로 자른 것처럼 정교하다. 기존의 성돌은 크기가 일정한데 복원한 부분은 비교적 일정하지 않았다. 같은 바른층쌓기인데 복원된 부분의 돌은 더 정교하게 다듬었는데도 틈새는 더 벌어져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비해 옛 성벽은 단단하면서도 쐐기돌을 박아 무너질 염려는 거의 없어 보였다. 아무튼 원형을 유지하여 복원하느라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공사장비가 드나든 곳이 길처럼 되어 있는데 장비가 드나드느라 파헤친 곳에서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널려 있다. 몇 조각을 모아 살펴보았다. 기와는 회색 점토를 구워 만들었는데 전문가라면 전체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것도 있고 빗살 비슷한 무늬가 남아 있었다. 이 기와 조각에서도 임존성의 그것처럼 명문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된다. 토기 조각은 중간 테두리 부분인지 볼록하게 나온 테두리가 보였다. 붉은 점토에 흑갈색 유약을 발라 구운 토기였다. 복원된 부분이 많았지만 원형을 살려 복원했기에 성벽이 나를 많이 흥분시켰다. 벽에 붙어 서서 한동안 서 있다가 남문지로 올라갔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