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바람이 초록을 입었다. 청량한 바람이 초록빛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몰고 오는 꽃 향에 가슴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한다. 가슴이 벌렁댄다. 애써 걸어둔 마음의 빗장이 헐거워지려 하고 있다. 빗장을 풀고 마음이 가는대로 바람을 따라 나선다.

자드락길이다. 이제 막 새순들이 돋아나 햇살과 바람과의 교감을 시작한 봄날의 산야는 풋풋하다. 모진겨울을 견뎌내고 봄 햇살을 따라 돋아난 푸른 융단 위를 걷는다. 무거운 체중을 얹어 마구 밟는 게 민망스러워 조심조심 내디뎌본다.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사그락사그락 풀잎 부딪는 소리가 정겹다. 주변을 돌아본다. 보랏빛 꽃을 달고 바람에 하늘대는 꿀 풀도 보이고 산 마늘 바위취도 눈에 들어온다. 심고 가꾸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피어나 오가는 길손을 맞이하는 야생초들이 대견스럽고 반갑다.

시렸던 겨울의 잔영들을 밀어내고 태동을 시작한 봄날의 자드락길 위에서 철따라 변하는 숲의 사계(四季)에 대해 생각해본다.

봄을 맞이한 산야는 이웃하며 살아가고 있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하다. 모진 겨울을 살아 내기 위해 한껏 웅크리고 있던 두 팔을 길게 뻗어 서로 마주잡고 ‘그간 별고 없었느냐’며 악수를 한다. 꽃 향에 이끌려 찾아 온 이들에게도 이제 막 돋아난 여린 잎을 나풀거리며 반갑다고 환영한다. 봄 햇살 가득한 산자락에 세속에 찌든 마음 한 자락을 내려놓으면 감싸 안아 어루만져 치유해 준다. 저들과의 조우로 해 남루했던 마음 안에 햇살 한줌 고여 들기 시작한다. 움츠러들었던 자잘한 소망들이 저들의 속삭임에 힘입어 다시 한 번 일어서기 위해 힘찬 기지개를 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는 생명의 용트림으로 충만한 봄날의 산야가 베푸는 축복이다.

녹음으로 우거진 여름날 작열하는 태양이 머무는 작은 오솔길을 걷노라면 주변의 산자락에서 키가 자라며 새로운 가지를 내고 몸집을 불리기 위한 함성으로 가득한 여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계절의 순환에 힘입어 피워낸 아기 손바닥 같은 꽃잎 위에 작은 열매를 품고 봄날의 호사를 누리던 산딸나무도 열매를 키워내느라 분주하다. 작은 소곤거림으로 가득 한 것이 봄날 자드락길을 걸으며 마주 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 여름의 소리는 시끌벅적하다. 이는 작열하는 태양과 세차게 퍼붓는 소나기와 천둥번개까지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여름을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외치는 소리다. 튼실한 열매를 거두기 위한 부르짖음이다.

숲에 성숙을 위한 계절이 있다면 우리네 사람에게도 숲의 여름에 버금가는 시절이 있다. 그 때에 주어진 삶의 텃밭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쭉정이를 거둘 것인가, 알곡을 거둘 것인가가 결정 된다. 다가올 삶의 한 자락 어느 시점에선가 옹골찬 열매 하나쯤 거두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내느라 안간힘 한다. 계절의 중심에 서 있는 여름의 숲을 찾아든 이들은 숲이 뿜어내는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새 힘을 얻는다. 기력이 쇠잔해져 방전 되려하는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소슬한 갈바람이 찾아들면 가을산은 품안에 품었던 열매를 내어 주기 위한 준비를 한다. 바람의 크고 작은 몸짓에 따라 상수리마무도, 아람나무도 제 분실들을 아낌없이 쏟아낸다. 온 힘을 기울여 빚어낸 소산물을 온전히 내어 주기 위함이다. 가을 산에 찾아든 이들은 반들반들 윤기 나는 아람을 주우며, 알이 꽉 차 녹말이 많을 것 같은 꿀밤을 손에 넣으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있는 힘을 다 했건만 추수 때가 되었음에도 누군가에게 내어 주어도 될 만큼 변변한 것 하나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주억거린다. 이는 인생의 봄여름 가을을 충실히 살아내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 자책한다. 그런 그의 어깨 위로 나뭇잎하나 가만히 내려 앉아 토닥여주며 속삭인다. ‘괜찮다고, 우리도 항상 많은 열매를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며 위로한다. 소슬한 갈바람도 ‘아직도 남은 날들이 있지 않느냐’면서 그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 준다.

동면에 들 준비로 분주한 산야는 불렸던 몸집을 가벼이 하기 위해 몸 안에 남아 있는 마른 잎들도 털어내고 뿌리를 땅 속으로 깊게 박고 버텨 서려 온 힘을 다한다. 푸른 잎을 내고 작은 꽃들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으며 숲의 주인으로써 아주 당당했던 들풀들이나 나무들도 돌아오는 겨울을 살아내기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있다. 진액을 쏟아낸 숲에 있어 겨울은 쉼이다. 겨울이 주는 쉼을 통해 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겨울답게 추워야, 푸지게 눈이 내려야 숲이 더욱 풍성해진다. 그들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돌아오는 봄 날 얼마나 풍성한 잎을 내고 꽃을 피울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 봄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찬 서리와 눈보라 속에서 꽃망울을 맺고 키워간다. 목련이 이른 봄 실한 꽃을 피워 낼 수 있음은 겨울을 충실히 살아낸 결과다.

초겨울 산모롱이를 찾아든 이들도 산야를 돌아보며 겨울을 살아내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싶어 마음이 분주해진다. 한 해를 살아내느라 쏟아 놓았던 많은 일들을 정리해야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크고 작은 소용돌이를 잠재우려 안간힘 한다. 심신이 가벼워지기 위해 마음 한 자락에 얼크러져 있는 가시 돋친 풀들을 모두 걷어내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야 하리라 다짐한다. 겨울을 잘 살아내야 기쁘게 봄을 마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이나,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봄날의 자드락길을 걸으며 오늘도 꿈을 꾼다. 사시사철 넉넉한 자연의 품을 닮아 삶의 한 자락을 풍요롭게 가꾸어 보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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