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화창한 봄 날씨가 이어지고 가뭄이 계속되는 날이다. 그래도 타들어가는 농촌 들을 바라보며 비 오기만을 하늘에 기도하며, 맛있는 외식(外食)을 하고자 음식점을 찾았다. 집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다보니 식상(食傷)해지기도 하지만 입맛이 없을 때 나가먹으면 같은 음식이라도 맛이 달라지는 매력이 있음이 아니던가.

이와 같은 이유로 나도 아내와 같이 가끔 외식을 한다. 맛있다는 손 짜장 집도 가고 해물 칼국수 보리밥집을 찾는다. 주머니 사정이 좋을 때는 한우 집 횟집도 간혹 가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사는 즐거움도 빼 놓을 수없는 삶의 향기가 아니던가.

오늘은 어쩐 일로 큰아들이 보리밥집으로 초대를 했다. 주말이면 가끔 큰딸이 한우 집으로 또 서울 있는 작은 딸이 오면 닭백숙집으로 가 보양식을 사주기도 했었다.

나는 모처럼 부모님대접을 한다면서 어찌 보리밥집으로 할까 하고 불쾌하게 여겼다. 하지만 손자 아들 며느리와 아내까지 보리밥집이 좋다하고 몰려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보리밥집은 넓은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대고 있었다. 큰 그릇에 보리밥을 담아 상큼한 봄나물을 집어넣어 고추장에 비비고 참기름도 뿌려 구수한 된장국을 곁들여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진수성찬이 또 어디 있을까. 역시보리밥은 고추장에 비벼야 제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몸보신할 좋은 음식을 사드리지 못하고 보리밥을 사드려 죄송하다는 아들은 보리밥을 자주 드셔야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실 수 있다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보리밥은 소화도 잘되고 당뇨병에 좋고 비만을 덜어주는 건강식품 이라는 것이다. 나도 동물성 음식을 즐기는 외식보다는 다이어트 식품이고 또 우리 서민들이 즐겨먹는 대중 음식이라는 점에 보리밥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8·15해방직후 극심한 가뭄으로 논에 모한포기 심지 못하고 메밀 씨를 뿌리고 보리죽을 진저리나게도 먹었던 일을 기억한다. 보리죽이라도 먹는 집은 그래도 먹고살기가 낳은 집이고 모두가 산나물을 뜯어먹고 때를 이어가니 온몸이 뚱뚱 부어 일도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참으로 슬픈 일 이었다. 세상에서 배고픔만큼 서러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굶어 보지 않으면 누구도 그 슬픔은 모른다.

향수가 샘솟듯 하는 것이 보리밥이다. 그때의 그 보리밥은 배고픔 을 덜어주는 밥이었지만 오늘 먹고 있는 이 보리밥은 배부른 시대의 기호식품으로 여기는 밥 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맛과 의미가 다르다. 인생의 삶의 가치가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식생활에도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음을 절실하게 느껴진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뼈아픈 서러움을 딛고 오늘의 풍요(豊饒)를 이룩한 산업화 세대(世代)의 고달픈 눈물과 땀방울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리라. 여기에 보리밥을 먹는 진미(珍味)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모에게 보리밥을 대접하는 아들의 뜻이 부모의 건강을 위한다는 효심에 보리밥 한 그릇이 보약보다 소중함을 느끼면서 보리밥집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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