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근심이 많았다. 진(晉)나라와 연(燕)나라의 공격에 군대가 연일 패한 것이었다. 신하들에게 해결방법을 묻자 재상 안영이 전양저(田穰?)라는 자를 천거했다. 경공이 전양저를 불러 국방과 군사에 대해 물었다. 전양저가 논하는 바가 막힘이 없고 이론이 실질적이라 경공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양저를 장군으로 삼았다. 하루는 변경으로 출정을 앞두고 전양저가 왕에게 부탁을 하나 하였다.

“왕께서 저를 높은 자리에 세워주셨으나 신은 본래 비천한 몸이옵니다. 그런 까닭에 아직 병사들이 따르지 않고 백성들이 믿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권위도 없는 것입니다. 하오니 장군 중에서 병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을 제가 인솔하는 군대의 감독으로 임명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경공은 즉시 장고 장군을 감독관에 임명했다. 양저가 장고와 다음 날 정오에 군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다음날 양저는 아침 일찍 군문에 당도하여 장고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에 장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어 장고가 군문에 도착했다. 전양저가 늦은 이유를 묻자 장고가 사과하며 대답했다.

“우리 문중 식구 하나가 지방으로 명을 받아 송별하느라 술이 과해 늦었소이다.”

그러자 양저가 엄하게 꾸짖으며 말했다

“장수란 군주의 명을 받으면 그날로 집안을 잊어버리고, 군령이 정해지면 그 부모를 잊어버리고, 전쟁에 나서면 자신의 몸을 잊어버리는 것이오. 지금 적들이 침입하여 변경의 병사들은 비바람을 맞으며 싸우고 있고, 왕은 잠자리가 편치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는 상황이오.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가 우리 군대에 달려있거늘 어찌 이 위급한 때에 송별이란 말이오!”

전양저가 노여워하는 음성으로 규율을 책임지는 군정에게 물었다.

“군법에 약속시간이 늦은 자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참형에 해당합니다.”

장고가 순간 두려워 급히 사람을 보내 경공에게 구해 주기를 청했다. 하지만 경공의 명이 도착하기 전에 장고의 목이 베어져 전군에 본보기로 내걸렸다. 이를 본 병사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잠시 후 경공이 보낸 사자가 와서 장고를 용서하라고 왕의 부절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에 양저가 대답했다.

“장수가 군대를 이끌었을 때에는 임금의 명령이라도 듣지 않을 수 있소!”

이에 사자를 돌려보내고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출전하였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란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출정하는 장수는 왕의 명령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로 쓰인다. 공직자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지,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공직에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직무가 있다. 아무리 상관의 명이라고 해도 바르지 못한 일이라면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부에 백성을 위한 정치와 국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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