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스승의 날이었다. 그날도 필자는 오랜 교직생활에 젖은 익숙한 몸짓으로 넥타이를 반듯하게 매었다.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당당하고 싶어 하는 교사가 한 분이 서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출근길에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면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최소한 오늘만이라도 허리 꼿꼿이 세우고 지내보자!’고. 스승의 날 등굣길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필자도 잘 모를 일이었다. ‘스승의 날에는 더욱 권위 있고 당당한 선생님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게 당연할 텐데, 그런 날 아침에 ‘겨우 허리나 꼿꼿이 세우고 하루를 지내기를 다짐하고 있다니!’ 좀 씁쓸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우리 아이들이 법으로 금하는 종이카네이션을 만들어 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일었다. 편지는 되지만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은 받으면 안 된다니 만일 만들어 오는 아이가 있으면 어떻게 돌려주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정성을 다했을 그 마음을 돌려보내야 하는 난감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아! 정말 어쩌나?’하는 걱정이 자꾸 일었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했다. 스승의 날이지만 학교는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운동장에서도 체육수업을 하고. 특별히 찾아오는 학생도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필자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그렇게 스승의 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교무실 저쪽 구석에서 학생 몇 명이 선생님 앞에서 무언가를 드리는 게 보였다. 필자는 애써 외면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교무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선생님들께 내민 것은 뜻밖에도 일반 상장용지였다. 상장?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여기저기서 선생님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대표 학생이 들고 찾아온 것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상장이었다. ‘상장 2017-♥호 팔방미인상 위 선생님께서는 수업이면 수업, 외모면 외모,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지셨으므로 이 상장을 드립니다. 2017년 5월 15일 ○학년 ○반 일동’ 상장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순간 필자는 일어나 마치 학생처럼 상장을 받았다. 기뻤다. 선생님께 상장을 줄 수 있다니! 내심 선생님을 위하는 그 참신한 발상에 즐거웠다. 학생회를 중심으로 스승의 날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늘 학생들만 상장을 받은 것 같아, 거꾸로 선생님들께도 상장을 드리자고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교무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일었다. 어떤 교실에선 스승의 날 노래가 울려 퍼졌다.

필자는 스승의 날을 다시 찾은 듯 흐뭇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이 어떤 상을 받으셨나 궁금해져서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렸다. 어떤 선생님은 ‘츤데레상’을 받았다. 무심한 듯 하지만 실은 학생들을 잘 챙겨주셔서 드리는 상이라고 했다. 아마도 상을 받으신 선생님들 모두 필자와 마찬가지로 기쁘고 즐거우셨으리라.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스승의 날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는 스승의 날이 되었으리라. 더욱 열심히 학생들에게 다가서고 더욱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는 날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스승의 날 행사가 참신하고 특이해서인지 여기저기 신문과 방송에 그 내용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참 오랜만에 교무실에 웃음꽃이 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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