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은 우리 현대사에 두고두고 기억될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9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고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과 피고인 모습으로 수갑을 찬 채 처음 국민 앞에 나타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일이 공교롭게도 23일 같은 날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에 당선, 취임한지 2주일째 되는 날 대통령으로서 오랜 친구인 노 전 대통령의 김해 봉하마을 추도식에 참석해 감회가 남달랐을 것으로 짐작되며 박 전 대통령은 무려 18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는, 명암이 엇갈린 역사적인 운명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이제 노무현의 꿈이 다시 시작됐다. 노무현의 꿈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다”말하고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지역주의와 이념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가 그의 꿈이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부터 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서민들의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되새겨 주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못다 한 일은 다음 민주정부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개혁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노무현 대통령이 그립다고 고백한 후 하지만 앞으로 임기동안 대통령을 가슴에만 간직하고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린다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5년간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직무를 잘 수행한 후 5년 후에야 찾아뵙겠다는, 비장의 약속을 한 셈이다.

반면 삼성 등 대기업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 전 대통령은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이 적용한 18가지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난 3월31일 구속된 이후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도 재판부를 향해 “변호인 입장과 같다”고 똑바로 말하며 본인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가 높고, 이미 장기간 심리를 진행해 온 만큼 공정하고 엄정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직 대통령이 탄핵당해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우리 헌정사의 불행이다. 봉하마을 추도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의 약속처럼 더 이상의 역사적 비극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전직 노·박대통령의 명암이 엇갈린 5월 23일,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이 통합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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