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갑 노인이 풍원이에게 전에서 일할 것을 지시했다. 풍원이가 윤 객주 상전에서 일한 지 두 해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풍원이가 좋아하는 내색 없이 대답했다.

“왜, 전에서 일하는 것이 싫으냐?”

“아닙니다요.”

“그런데, 그 표정은 뭐냐?”

우갑 노인이 물었지만 풍원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풍원이도 전에서 일하게 된 것이 기뻤다. 우갑 노인이 전에서 일을 하라고 한 것은 이제부터 장사를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었다. 전에서 일하는 것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장사를 배울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기뻐만 할 수 없었던 것은 앞으로 전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또 그때마다 어떻게 일을 잘 해결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상전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때는 뭐든지 시켜주기만 하면 잘 할 것 같은 의욕이 넘쳐흘렀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일머리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의욕만 앞세운다고 일이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풍원이도 알게 되었다.

전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되었던 날 저녁 우갑 노인이 풍원이를 불렀다. 일과시간이 끝나면 좀처럼 부르는 일이 없었던 터라 풍원이는 잔뜩 긴장을 하며 갔다. 우갑 노인은 전에서 풍원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점심나절에 도갑이가 다녀갔다.”

“도 선주님이요?”

“널 부탁하러 왔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풍원이는 자신이 일하는 곳까지 왔다 그냥 간 도 선주가 몹시 서운했다.

“일하는 너 산란하게 만든다며 서둘러 갔다.”

“도 선주님과 어르신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신가요?”

“우리? 우린 어려서부터 볼 것 볼 것 다 보고 자란 한 고향 동무다. 그런 동무 중에서도 도갑이는 각별히 고마운 친구다.”

“그러셨군요.”

“그렇게 서운하더냐?”

우갑 노인은 풍원이가 도 선주를 찾아갔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낮에 왔던 도 선주가 우갑 노인에게 그날의 일을 대충은 말을 했는가보다.

“어르신 아닙니다. 그때는 제가 잘 모르고 저지른…….”

풍원이가 우갑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변명을 했다. “솔직히 얘기해 보거라. 오랫동안 같이 일하려면 마음에 담아두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갑 노인이 풍원이에게 속에 품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라고 했다.

“실은 그날 몹시 서운해서 상전을 떠나려고 작정하고 도 선주님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렇게 서운했더냐?”

우갑 노인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저는 장사를 배우려고 상전에 들어왔는데 해가 차도록 허드렛일이나 시키고, 뭐하나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면서 느닷없이 창고에서 물건을 찾아오라더니, 또 잘못 가져왔다고 지청구를 주니 제 생각에는 저를 골탕 먹여 쫓아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풍원이가 그날 서운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우갑 노인도 풍원이 이야기에 동조했다.

“뭐라도 알아야 일을 할 텐데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언제 장사를 가르쳐 줄지 까마득해서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장사를 배우는 것이 날 듯 싶어 상전을 나갔습니다.”

“그래 나가보니 속이 시원하더냐?”

“시원하기는요. 도 선주님 만나 치도곤만 들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사람들은 지난날을 자꾸 잊어버리지. 나도 너처럼 남 집살이 하며 밤마다 혼자 눈물 흘렸던 지난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자꾸 예전 일은 잊어버리지. 그래서 너도 당연히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하지. 그래서 생각 없이 시킬 때가 많지. 상대방 입장은 전혀 생각 못하고.”

우갑 노인의 목소리 속에는 미안함이 들어있었다.

“어르신, 저도 생각이 짧았습니다.”

풍원이도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것을 남에게 배우려면 간 쓸개 다 빼버려야 해! 억울해도 참고, 더러워도 참어야 해! 그걸 못 참고 뛰쳐나가면 그걸로 끝나는 겨!”

“죄송합니다.”

“그리고 장사든 뭐든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니고, 니 스스로 하다 의문이 생기면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네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데, 남이 뭘 어떻게 가르쳐주겠느냐? 앞으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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