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회사, 출산 후 퇴직 강요 여전
여가부, 허술한 심사로 인증 남발
사후관리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

 연 18억 예산 투자에도 현실은 따로

여성 직원이 법으로 정해진 출산휴가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책상을 빼버리고 퇴직을 강요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해당 기업은 모범적으로 일·가정 양립을 실시하고 있다는 이유로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인증’까지 받은 곳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군포의 한 중소기업 3년 차 대리인 A(31) 씨는 지난 1월 4개월여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가 황당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자신이 쓰던 물건과 컴퓨터가 전부 사무실 한구석에 쌓여있고 자리에는 다른 직원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의 자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직원에게 “내 자리는 어디로 갔냐”고 물었지만 “모르겠다”란 대답만 돌아왔다. A 씨가 분개하자 회사 동료들은 참으라고만 할 뿐이었다.

A 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전공 업무와 전혀 무관한 잡일 보조 업무. 이럴 바에야 차라리 육아휴직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A 씨는 회사에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그러나 회사 대표는 되레 퇴사를 종용하며 “우리처럼 작은 회사에서 육아 휴직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가급적 사직하라”고 말했다. 대표는 “합의 하에 보상금은 지급해 드릴 수 있다”며 단돈 500만원을 제안했다.

이같은 일까지 발생했지만 해당 회사는 겉에서 보기엔 일·가정 양립을 선두적으로 하는 ‘가족친화인증’ 기업이었다. 회사는 2015년에 여가부로부터 가족친화 인증을 받았다.

인증 심사 과정부터 허술했다. 심사에서는 각종 서류 평가·임원진 면담 등과 함께 현장 평가, 즉 직원 인터뷰 평가가 이뤄지지만 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회사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심사 전부터 대표는 “이런 인증이 있으면 회사에 좋으니 여가부에서 심사 내려오면 꼭 잘 대답하라”며 직원들을 압박했다.

직원 인터뷰는 원칙적으로는 회사에서 20명을 뽑으면 이중 무작위로 여가부 측에서 10명을 뽑아 실시하지만 이 회사의 경우 남자 직원 2명과 여자 직원 2명만 실시했다. 숫자도 축소된 데다가 여직원 중 한 명은 심지어 대표의 아내였다.

평가 기준 중 큰 배점을 차지하는 ‘최고 경영층의 관심 및 의지’ 항목은 일·가정 양립의 의지를 묻는 수준의 경영층 인터뷰라 결국 인증을 따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가부에서는 해당 회사의 문제점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증을 일단 내주면 사후 관리 절차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3년마다 인증 재평가를 실시하고 인증 후에는 일·가정 양립 관련 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지만, 인증 기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용부에 신고가 들어오면 그때 인증 취소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증을 이미 받은 업체 중에서는 사후 발생한 문제로 인증이 취소된 업체는 전무하다. 2008년에 시작돼 2016년 기준 1천828개 기관이 가족친화인증을 받았지만 이 중 인증이 취소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에서 연 18억원(2016년 기준)의 예산을 투자하며 주력하는 사업이지만 ‘현실 따로, 정책 따로’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10년째 육아 정책을 연구해 온 육아정책연구소 이윤진 팀장은 “출산 휴가도 제대로 안 지켜지는 기업이 ‘가족친화인증’ 기업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며 “지난 10년간 숱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육아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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