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지난 18일, 광주 5·18 묘역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문재인’을 연호하는 함성들로 채워졌다. 광주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추모일이 아니라 축젯날 같았다.

추모식을 중계하는 생방송을 보는 동안 119 구조 차량을 먼저 보내는 대통령 차량에서 감동했으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에도 감동했다. 그리고 유족의 추모사를 들으며 눈물을 닦는 대통령의 모습에 안도했다. 동시에 참고 견디었던 그 무엇이 터지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설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추모식의 대미를 장식하는 유족의 추모 글을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추모 글을 낭독한 김소형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 아빠는 참 행복하게 살아 계셨을 텐데”라고 말했다. 철없었을 때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의 존재를 탓하며 살았을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생명을 부정하고 싶었을까?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생일이 아버지의 기일임을 알게 되면서 느꼈을 고통이 보고 있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의 고백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화면을 통해 보는 많은 사람을 울게 했다. 박수받아야 하고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숨어서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그 고통에 무심했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추모사를 마친 소형씨가 몸을 돌리자, 눈물을 닦던 대통령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고 소형씨를 부르며 그녀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복받쳐 오른 감정에 쌓인 그녀는 경호원의 안내 손짓을 보고서야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대통령을 보았고, 대통령의 포옹을 받았다. 이를 본 많은 사람은 소형 씨가 되어 진심 어린 대통령의 위로를 받았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씻겨나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나 역시 눈물을 닦으며 “세상에나, 도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온 거야” 싶었다.

누구나 응당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다 보면 사소한 것에도 당연한 것들에도 감동한다. 오랜 시간 부당한 상황에 놓여 살다보면 부당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죽는다. 대접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배려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진다. 혹여 누군가가 인격적으로 대우하면 오히려 의심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나는 새 대통령을 바라보는 다수의 시민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응당 누려야 할 것들을 억누르고 살아오다 보니 당연하게 받아야할 것들에 대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돌려받은 것에 대해 한없이 고마워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봉하 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시민들의 깨어있는 조직된 힘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조직된 힘을 우리는 촛불에서 만났다. 그 촛불은 사람 사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실천해줄 대통령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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