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업무 관계로 장거리 출장을 수차례 다녀왔다. 주로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비록 고속도로가 거리는 멀어도 시간이 적게 걸리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고속도로 운행에서 가장 힘든 것은 졸음과의 싸움이다. 주변에 둘러볼 경관도 없고 속도도 일정하니 장거리 운전에서는 의례 졸음이 몰려오고, 그래서 졸음쉼터가 반갑다. 졸음 다음으로 힘든 것은 추월차로 규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얼마 전 부터 집중 단속을 한다는 말도 있고, 과연 이 규정을 잘 지킬 수 있는지 출장을 다니면서 시험해보았다. 법규상 차로의 수에 관계없이 1차로는 추월을 위해 비워두어야 하고, 이것은 운전면허 시험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문제이다. 추월차로 규정을 지키는 시험적 노력의 결과, 편도 2차로 고속도로에서 추월차로 규정을 준수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무척 불편하다. 가장 큰 불편은 2차로의 도로 상태가 1차로에 비해서 상당히 불량하다는 것이다. 대형 차량들이 많이 다녀서 요철이 많고, 홈이 파져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 이로 인해 차량과 안전운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하면, 1차로로 주행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든다. 두 번째 불편한 점은 자주 차선변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규정을 준수하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불편이지만, 모두가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불편이 불만이 되어 버린다. 저속 차량을 추월하기 위해 1차선으로 차선변경을 시도했을 때 어느새 빠른 속도로 꽁무니에 다가와서 경적을 울리거나 위협을 가하는 차량이 있기도 하고, 저속차량 추월 후 2차로로 차선변경을 하려는데 뒤따라오던 차량이 먼저 2차로를 이용해서 추월을 해버려서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회적 규정의 준수는 그 나라 사람들의 약속이고 예절이다. 이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데 따르는 약간의 불편은 더 큰 사회적 이익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 이 당연한 논리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국가가 성장하고 발전할수록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데 따르는 불편은 더 많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불편은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당초의 불편은 상대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국가와 책임기관은 사회적 약속 준수에 따른 불편이 불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감시해야 하는데, 특히 사회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집단과 이 불편의 감수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노력해야 한다.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개인적인 재산권을 침해받거나 하류지역의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의 불편을 겪고 있는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국가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불편을 겪고 있는 소수의 주민들에게 환경보호의 의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환경보호라는 대의적 명분을 위해 자신들의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노력과 혜택을 받는 지역의 사회적 협력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불편은 불만이 되고 갈등이 된다. 그래서 환경보호의 문제는 자주 공공의 비극으로 전락해버린다. 환경보호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 문화가 되기보다는 불만이 되는 경우가 아직은 훨씬 더 많다. 고속도로의 추월차로이든 환경문제이든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주장이 현실을 모르고 하는 공허한 목소리라고 비판받지 않으려면 규정 준수에 따르는 불편이 불만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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