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문학축제 옥천 ‘지용제’ 내일 팡파르
다양한 프로그램 통해 정지용 시인 문학혼 기려
사전 행사로 ‘30년만의 서울나들이’ 개최
지용문학상에 김남조 시인의 ‘시계’ 선정

지용제는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이며 우리의 언어를 시적 형상화한 시인이자 우리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시인 정지용을 추모하고, 그의 시문학 정신을 이어가며 더욱 발전시키자는 뜻으로 매년 5월에 여는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의 문학축제’다.

일제 강점기는 정지용에게 ‘친일시인이라는 누명’을 씌우기도 했으며 해방 후 좌우익 대립의 혼돈은 그를 방황케 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는 아예 그를 ‘월북시인’으로 낙인찍어 그와 그의 문학을 묻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1988년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던 해, 그해는 세계인이 한국을 주목하던 시절이었으며, 시인 정지용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던 해이기도 하다.

‘판금’의 서슬 앞에 그를 기억하는 모두가 30여년을 숨죽이며 기다렸던 그날 1988년 4월 1일, 시인 정지용을 흠모하던 이 나라의 시인과 문학인, 그의 제자들이 모여 ‘지용회’를 발족해 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1회 지용제를 열게된다.

당시 지용회 초청으로 1회 지용제에 참가한 박효근 전 옥천문화원장은 ‘옥천이 낳은 시인을 왜 서울에서 만나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지용제를 본 뒤 ‘옥천에서 낳고 대한민국이 인정하고 세계가 감탄한 정지용 시인’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고 다음달인 5월 15일(정지용 시인이 태어날 날) 제1회 지용제를 열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제1회는 지용제는 서울과 옥천에서 두 번 열게 됐다.

그로부터 30년, 올해로 30주년을 맞게 됐다.

옥천의 자랑인 대한민국의 대표적 문학축제로 자리매김한 지용제는 우리나라 문학축제중 유일하게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에서도 열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축제가 된 것이다.

지난 12일 ‘30년만의 서울나들이’로 열린 지용제는 김영만 옥천군수를 비롯해 유재목 군의회 의장, 김승룡 옥천문화원장, 유자효 지용회장과 회원, 옥천 출향인, 전국 문학인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어령 제1대 문화부장관도 함께해 자리를 빛냈다.

무엇보다 이날 제1회 지용문학상 박두진 시인을 비롯해 지용문학상을 수상한 29명의 수상작품집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해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서울나들이가 됐다.

이 작품집에는 1~29대 수상작품 29편에 각 수상자들의 대표작 1편씩을 더해 총 58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날 서울나들이 행사에는 역대 지용문학상 수상자들과 지용회, 그리고 그의 고향인 옥천에서 지용정신을 이어가는 인물들이 참가했다.

제29회 정지용 문학상으로 선정된 김남조 시인은 ‘시계’를 통해 그이 나이 구순에도 끊이지 않는 창작열기를 보여 주고 있는 시인다.

김남조 시인은 수상소감에 앞서 “이번 제29회 정지용 문학상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하루는 생각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는 그 사이에 이 상을 받는 데 대한 열망과 정지용 시인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깊이 느끼고 싶어서 였다”며 “다음날이 돼서야 상을 받겠다고 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 과분하고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라는 정지용 시인의 호수를 읊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 시인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김남조 시인은 정지용문학상 초창기부터 심사를 맡는 바람에 지금까지 수상하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현역 시인 가운데 최고령이 됐다.

구순이 넘은 그가 정지용 문학상을 받으면서 하루 동안 설레는 마음과 정지용 시인에 대한 그리움을 떠 올리며 마음의 ‘여유’를 가진 것은 우리나라 대표적 시인인 본인에게도 정지용 문학상에 담긴 감회와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김남조 시인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며 “시인을 사랑하는 한국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 전통을 오래 후세에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유자효 지용회장은 “올해는 지용제가 30주년을 맞는 해로 특별히 지용회가 만들어진 1988년 월북문인들에 대한 해금조치로 어둠속에서 읽혀지던 정지용 시인의 시들이 광명을 보게 되면서 우리나라 문학사에 또다른 전환점이 됐다”며 “정지용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용회를 결성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제1회 지용제를 연 뒤 30년이 지난 오늘 다시 그 자리에서 지용제 30주년을 서울에서 갖게 돼 가슴 벅차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승룡 옥천문화원장은 축사를 통해 “정지용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위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시인이며 시인의 시는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한국적으로 표현한 인물”이라며 “옥천에서 낳고 대한민국이 인정하고 세계가 감탄한 정지용 시인이야 말로 옥천과 한국의 보배요, 세계적 시인”이라고 말했다.

김영만 옥천군수는 “옥천에서는 매년 5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전국의 문학인 및 시를 사랑하는 인물들을 모시고 정지용 시인의 문학혼을 기리고 있다”며 “정지용 문학상을 비롯해 정지용 신인문학상, 정지용 청소년문학상, 정지용 백일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정지용 시인을 알리고, 기리는 대한민국 대표적 문향의 고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목 옥천군의회 의장도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한 인물들만 봐도 한국 현대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며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기틀을 마련한 정지용 시인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큰 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30년만의 서울나들이 행사에서는 지용제가 대한민국 으뜸축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공로가 있는 원로언론인 김성우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용제를 빛낸 인물로 선정해 감사패를 수여했다.

서울나들이가 무엇보다 뜻 깊은 것은 정지용 시인의 대표적 시인 ‘향수’가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 노래로 친숙함과 지지를 얻은 박인수씨와 이동원씨가 10여년만에 한 무대에서 열창을 하는 모습도 지용제의 또 다른 역사를 보는 듯 했다.

‘詩(시) 끌벅적 감동 30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지용제는 19일부터 오는 21일까지 옥천읍 상계공원상설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김승룡 문화원장은 “올해 30주년을 기념으로 옥천지용제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고향 옥천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문학콘텐츠로도 성공하는 축제의 모범사례를 만들 것”이라며 “특히 축제 사전에 개최된 ‘지용제 서울나들이’ 축제가 옥천을 전국권으로 홍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된 만큼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축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용제가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추모제에서 문화관광축제로, 문학이라는 차별화된 컨텐츠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축제로, 전국민이 함께하는 문화축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정지용 시인 연보

1902 :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연일정씨 정태국과 하동정씨 정미하 사이에 독자로 태어남. 지용의 아명은 못에서 용이 하늘로 천하는 태몽을 꾸었다하여 지용이란 발음의 한자를 맞춘 것임.

1913 : 동갑인 은진송씨인 송재숙과 결혼

1918 : 휘문고보에 입학. 이때부터 습작 활동을 시작.

1919 : 12월 창간호에 소설 ‘삼인’이 발표됨 지용의 유일한 소설, 동인지를 김화산,  박팔양, 박소경 등과 함께 주도.

1924 :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으로 유학해 경도에 있는 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

1926 : 공적인 문단활동 시작.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비롯해 동시 및 시조를 표. 1929년 동지사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일본 문예지에 일본어로 된 시들도 많이 투고해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 북원백추의 관심을 받게 됨.

1929 : 동지사대학교를 졸업. 휘문고보의 영어교사로 이후 16년간을 재직. 시 ‘유리창’을 씀

1935 : 제1시집 ‘정지용시집’을 시문학사에서 출간.

1939 : 문장지 추천위원이 됨.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킴.

1941 : 제2시집 ‘백록담’을 문장사에서 출간.

1946 : 경향신문 주간이 됨. 을유문화사에서 ‘지용시선’ 출간.

1950 :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에 구금돼 서대문 형무소에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같이 수용됐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같이 수감됐다가 그 후 폭사당한 것으로 추정. (부인 송재숙씨는 70세를 일기로 1971년 4월 15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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