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뭐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앞으로 장사를 하려면 윤 객주 집에서 뭘 배워둬야 하는데 전혀 아는 것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장사를 배우려면 알아야 물어보던지 말든지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찾아서 배울 일도, 찾아서 스스로 할 일이 없었다. 참으로 답답할 뿐이었다.

무주공산이라도, 그믐날 밤길을 걸어도 이보다 막막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당을 또 쓸고, 쓴 마당을 또 쓸었다. 그래도 답답하고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시라도 서둘러 장사를 배우고 독립하여 돈을 벌어야 보연이를 찾아와 함께 살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비질만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견디다 못해 하는 수없이 우갑 노인을 찾아갔다. 풍원이가 전에서 쫓겨났던 그날 이후 창고를 오가거나 마당을 쓸다 우갑 노인을 만나곤 했다. 그런데도 우갑 노인은 풍원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갑 노인에게서 찬바람이 쌩쌩 불어 감히 말을 붙여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워낙 속이 답답해 터질 지경이니 마음을 다져먹고 찾아갔다.

“전에는 뭣 하러?”

우갑 노인에게서 냉기가 뿜어나왔다.

“어르신 제발 저에게 장사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풍원이가 애절한 마음으로 사정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네가 날 알려 주거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네가 장사 방법을 알고 있다면, 네가 나에게 알려달란 말이다.”

“저는 모르는데요.”

“너도 모르는 녀석이 뭘 알려달라는 것이냐?”

“네?”

풍원이는 우갑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자신을 대면하는 것도 싫어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느냐? 네가 장사에 대해 뭐라도 알고 있으니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 아니냐?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고 싶은 것이 있겠느냐. 그러니 그 방법을 내게 알려달라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

“안이고 밖이고 난 아는 게 없으니 네게 가르쳐 줄 것도 없다. 설사 아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먼저 너를 가르쳐주지는 않을게다. 내가 아는 것이 네게 필요할는지 어찌 알겠느냐? 장사든 뭐든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풍원이는 여전히 우갑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을 윤 객주 상전에서 장사를 해왔으면서 장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가르쳐줄 수 없다니 그런 억지소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장사를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알아도 먼저 가르쳐주지는 않겠다고 우갑 노인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마당이나 비질하며 창고나 청소하며 언제까지나 허드렛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윤 객주 상전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했다. 풍원이는 윤 객주 상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풍원이는 그 길로 온다간단 말도 없이 윤 객주 상전을 나와 버렸다. 윤 객주 상전을 나와 풍원이가 찾아간 곳은 단월에 있는 도진태 선주였다. 풍원이가 김 참봉의 동첩으로 보연이를 빼앗기고 그 꼴을 보기가 싫어 뛰쳐나와 처음으로 만나 배를 타게 된 선주였다. 풍원이가 뱃일을 그만두며 헤어질 때 무슨 일이 생기면 단월로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이 떠올랐다. 풍원이는 차라리 도 선주를 따라 일을 하며 장사를 배울 작정이었다.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했지만 윤 객주 상전에서 마당이나 쓸며 세월을 보내느니 위험하더라도 그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였다.

충주 관문에서 단월은 십 여 마장이 좀 넘는 거리였다. 단월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래강 연안에 있는 강마을 나루터로 물길이 좋아 배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풍원이가 윤 객주 상전을 떠나 단월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해가 한 발은 남아있을 즈음이었다. 도진태 선주의 본래 고향은 단월에서 달래강을 거슬러 올라간 유주막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 유즈막을 떠나 단월에 터전을 잡은 것이 배를 짓던 선친 때부터였으니, 이곳이 고향인 셈이었다. 그러니 단월에서 도진태 선주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도 선주 어르신!”

풍원이가 도 선주의 얼굴이 보이자 반가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아이고! 이게 얼마만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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