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 제4부 최풍원 장삿길로 나서다 <91>
[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 제4부 최풍원 장삿길로 나서다 <91>
  • 충청매일
  • 승인 2017.05.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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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가 되도록 이제껏 단 한 번도 즐거웠던 기억은 없었다. 우갑 노인의 이야기를 듣기 직전까지도 풍원이는 자신에게는 결코 좋은 일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했었다. 그런데 이런 기쁜 일이 생기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 모든 고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장사만 열심히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풍원이는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렇게 좋아라만 할 일이 아니다, 이 놈아! 고생은 지금부터여!”

“그래도 좋아요!”

“하룻강아지가 범이든 무서우랴? 모르니 살지.”

좋아 날뛰는 풍원이를 바라보며 우갑 노인이 말했다.

풍원이가 윤 객주를 따라 충주성 내 상전에 온지 일 년 만에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풍원이가 상전에서 주로 하는 일은 전과 창고를 오가며 전에 진열할 물건들을 나르거나 떨어진 물건을 채워놓는 일이었다. 또 전에 없는 물건을 원하는 손님들에게 창고에서 찾아다주는 것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단순한 것 같았지만 그가 그렇지 않았다. 윤 객주 상전에는 열 칸이 넘는 큰 물산창고만 십여 개였고, 대여섯 칸에서 두세 칸짜리까지 고만고만한 물산창고는 삼십 여개도 넘었다. 그런 물산창고가 상전 곳곳에 흩어져있었고, 그 속에 쟁여져 있는 물목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많았다. 그런 지경이니 일 년밖에 되지 않은 풍원이가 물목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고, 어떤 물산이 어느 창고에 있는지 익히는 것만도 힘들었다. 청풍장에서 단순하게 채마 종류만 팔던 풍원이는 상전에 진열된 물목만 해도 가짓수가 많아 눈이 휭휭 돌아갈 지경이었다.

“망건통 있는가?”

어느 날 상전으로 선비 한 사람이 들어와 물었다.

“물론입죠.”

우갑 노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하나 줌세!”

우갑 노인보다 나이가 한참은 적어보이는 선비가 하대를 했다.

“알겠습니다요.”

 우갑 노인이 전에 진열된 물건들 속에서 망건을 찾았다. 선비가 찾는 망건이 없는지 우갑 노인이 여기저기를 뒤적였다.

“어째 이리 더딘가?”

우갑 노인이 뜸을 들이자 선비가 참지 못하고 성을 냈다.

“선비님, 노여움을 푸시고 잠시만 계시면 곧바로 대령하겠습니다요.”

우갑 노인이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선비 눈치를 살폈다.

“에이! 그깟 망건통 하나 찾는 걸 갖고 뭘 그리 꿈지럭거리는가?”

선비의 얼굴에는 못마땅함이 그대로 쓰여 있었다.

“풍원아 이리 좀 오너라!”

풍원이가 전의 다른 칸에 있다가 바쁘게 달려왔다.

“어르신, 부르셨습니까?”

“참으로 말세구만! 요새는 개도 소도 다 어르신이여. 장사치가 무슨 어르신이여?”

선비는 우갑 노인을 어르신이라 부르는 풍원이의 호칭이 몹시도 귀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선비님! 아이가 아직 철이 부족해서…….” 

“에이, 마뜩찮아서 인젠 바깥출입도 못하겠어!”

선비는 몹시 불쾌한 표정이었다.

“너는 냉큼 달려가 망건통을 가져오너라!”

풍원이가 물산창고로 달려갔다. 그래도 한 해 동안 허드렛일을 하며 창고도 보아온지라 바깥양반들이 쓰는 물품들이 어느 창고에 보관되어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우갑노인이 망건통을 가져오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이 생활용품 창고로 향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풍원이는 우갑 노인이 허드렛일부터 배우라고 한 까닭을 알았다. 문제는 창고 문을 들어선 다음이었다.

창고 안에는 바깥양반들이 쓰는 물품은 물론 안사람들이 쓰는 물품들이 그냥 쌓여있었다. 문갑, 책상, 연상, 사방탁자, 경대, 가께수리, 함, 반닫이 같은 가구에서부터 장죽, 담배합, 담배대꽂이, 재떨이, 타구, 요강, 여의, 등대, 화로, 인두, 인두판, 부삽, 화젓갈, 등잔, 바느질고리, 실궤, 자장궤, 문서궤, 횃대……가 첩첩했다. 그 속에서 풍원이가 겨우 망건통을 찾아 부리나케 상전으로 달려갔다.

“에이 이놈아! 이게 망건통이냐? 갓집이지!”

우갑 노인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풍원이가 가져온 것은 망건통이 아니라 갓을 보관해두는 갓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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