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원이가 윤 객주의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하여 즉답을 피했다.

“하기야 어려서부터 집도 절도 없이 장마당을 떠돌던 놈이 무슨 문자를 익혔겠느냐?”

윤 객주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풍원이는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아버지가 역모죄로 몰려 패가망신하기 전까지는 고관대작이나 부잣집 도령처럼 풍원이도 집에 독선생을 모시고 글을 배웠었다. 평생 아전을 하며 벼슬아치들로부터 받은 수모를 앙갚음하기 위해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다. 그리고 선생을 불러 글을 읽게 했다. 동몽선습에 사자소학까지 떼고 통감절요를 배우며 본격적으로 한문 공부를 시작할 무렵 집안이 몰락했던 것이다. 이후 서책은 구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고달팠었다. 풍원이는 혹여 자신의 내력이 밝혀지면 이로울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었다.  

“주인어른! 우갑입니다요.”

그때 밖에서 윤 객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무슨 일이시온지요?”

“오늘 식전 나절에 유주막에 소금 쉰 섬을 도거리 해놨네. 섬당 석 냥 네 푼에 샀으니 한 냥씩만 붙여 모두 풀어버리게! 그리고, 이 아이 자네가 맡아서 장사 좀 가르쳐 보게!”

“알겠습니다요.”

환갑은 넘겼을까, 수염이 희끗히끗한 우갑이라는 늙은이는 나이 탓인지 행동은 좀 굼떴지만 눈빛만은 광채를 발했다.

“대금은 어찌하시기로 하셨는가요?”

“현물로 맞교환하기로 했네. 안 창고에 송심, 수달피, 석청을 유주막 마 선주에게 갖다 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요.”

“아저씨, 조금만 기다리면 곱절은 오른다는 데 왜 서둘러 처분하시는가요?”

풍원이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소금 값이 금값이 될 것이라는 마 선주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윤 객주가 겨우 한 냥의 이문만 붙여 판다고 하니 너무나 아까워서였다.

“곱절이 뛴다고 누가 그러더냐?”

“아침나절에 유주막에서 마 선주라는 분이 그러지 않았던가요?”

“그건 마 선주 생각일 뿐이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있느냐? 그 사람 말만 믿고 곱절이 뛸 때까지 기다리다가 도리어 소금 값이 폭락해 원전도 못 건지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 마 선주 말만 믿었다가 손해를 봤으니 당신이 책임지라고 하면 마 선주가 돈을 물어주겠느냐.”

“그래도 확실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요?”

풍원이는 못내 아쉬워 마 선주의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마 선주는 한양 시류는 잘 알겠지. 그렇지만 여기 충주 시류는 내가 잘 알지. 그러니 여기까지 물건들을 싣고 와 내게 넘기는 거 아니겠느냐? 내 장사는 내가 판단을 하는 거야. 상대를 무조건 불신해도 안 되지만, 상대를 무조건 믿어서도 안 되느니라. 그리고 너무 욕심을 부리면 화를 당해. 값이 적당할 때 얼른 파는 것도 장사의 한 방법이니라. 아침에 나가 쉰 냥을 벌었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그 돈이면 쌀이 열 섬이 넘고 상머슴 삼 년은 부릴 세경인데, 안 그러느냐?”

윤 객주의 한마디 한마디가 풍원이에는 그저 새로울 뿐이었다.

“그리고 우갑 아범, 이 녀석 다닐 글방 좀 알아보게!”

“알겠습니다요.”

“글방을 보내주신다고요?”

“문자라도 깨쳐야 장부라도 적을 것 아니냐?”

“저는 안 갈래요! 글방에 가려면 그 시간에 장사를 한 가지라도 더 배울래요!”

풍원이는 한시라도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윤 객주의 호의를 거부했다. 그 순간 우갑 노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풍원이를 노려보았다.

“데리고 나가보게!”

“알겠습니다요. 넌, 날 따라 오거라!”

우갑 노인의 목소리에 화가 잔뜩 들어있었다. “우리 상전 안에서는 객주님 말씀이 곧 법이다! 여기에서 객주 어른의 말씀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네 놈이 무어라고 객주 어른 말씀을 거역하느냐?”

우갑 노인이 풍원이를 질타했다. 그러고 보니 우갑 노인은 윤 객주의 말에 단 한 번도 가타부타 않고 알겠다는 대답만 했다.

“저는 글방 갈 틈이 있으면…….”

“어허, 그래도 이 눔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우갑 노인이 풍원이 말을 자르며 호통을 쳤다. “앞으론 무조건 객주 어른 말씀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객주님이라고 부르거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요.” 우갑 노인의 강압적인 말투에 기가 꺾인 풍원이가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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