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처럼 큰 장사꾼이 되고 싶었다. 자신을 거둬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윤 객주가 자신을 받아줄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소개해줄 만한 지인도 풍원이에게는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것이 있었다면 풍원이는 윤 객주에게 매달려 그의 밑에서 장사를 배우고 싶었다. 윤 객주가 거둬주면 금방이라도 거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윤 객주에게 매달리기에는 풍원이가 가진 것이 너무나 없었다. 그런데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말을 건넨 것인데 선뜻 윤 객주가 풍원이를 받아주었다. 유주막에서 처음 만나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윤 객주가 받아주겠다니 의지가지없는 풍원이에게는 캄캄한 밤길에 길동무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나 진배없었다.

“내 집으로 가자꾸나?”

“예! 예!”

풍원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허둥대며 윤 객주 뒤를 따랐다.

윤 객주를 따라 충주성안에 들어선 풍원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 밖과 달리 성안은 풍원이가 이제껏 구경도 못한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청풍읍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길도 널찍널찍하고 번듯번듯한 집들이 늘르리하게 지붕을 맞대고 이어져 있었다. 저자거리에도 큰길 양쪽으로 선전·면포전·면주전·저포전·청포전·모전·세물전·유기전·싸전·염전·어물전·지전·연초전·상전들이 즐비했다. 피륙 전에는 형형색색의 비단과 올 고운 포목들이 진열대마다 그득했고, 곡물전에는 눈처럼 흰 쌀과 보리·콩·조·기장·수수·밀·옥수수가 멍석마다 수북했다.

잡화전에는 이제껏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진귀한 물건들이 수도 없이 널려져 있었다. 전포들 끝으로는 나래비를 이룬 가가들과 난전들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땅바닥마다 펼쳐진 좌판 위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놋그릇과 철물·죽물·목물들이 열을 지어 벌여져 있고, 온갖 종류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채소전에도 배추와 무, 파·마늘·고추전이 각 전으로 열리고 있었고, 제철 나물은 물론 지난해 갈무리 해 놓았던 각종 묵나물들이 채반마다 넘쳐났다. 구경만 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충주성안 저자에는 사람들과 물건들이 지천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충주의 장마당에 비하면 청풍 읍장은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풍원이는 성안 저자의 규모와 풍성함, 그리고 번잡함에 놀라 눈을 떼지 못했다.

“관청 잡혀온 촌닭 같구나!”

저자 모습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있는 풍원이를 보며 윤 객주가 놀렸다. 풍원이는 저자 거리를 구경하면서도 길을 잃을까 걱정되어 부지런히 윤 객주 꽁무니를 따라갔다.

윤 객주 상전은 전들이 즐비한 저자거리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청풍장에서 한 가지 물건만 파는 전과 가가만 보아왔던 풍원이는 온갖 곡물과 잡화를 함께 파는 윤 객주의 상전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풍의 모든 전과 가가를 합쳐도 규모나 물량 면에서 윤 객주의 상전에 미치지 못할 듯 했다. 일 자로 곧게 뻗은 저자거리를 바라보며 꾸며진 전은 언뜻 보아도 전면에만 스무 칸이 넘었다.

그 전마다 품목을 달리하는 갖가지 물산들이 쌓여있고 각 전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달리 있었다. 윤 객주를 따라 풍원이가 전 사이로 난 평대문을 들어서자 널찍한 마당과 가장자리로 ‘ㅁ’자 집채가 나타났다. ㅁ자 집채의 앞은 열두 줄 행랑이 전과 붙어있고 양 옆으로는 곳간·광·헛간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만수야! 우갑 아범, 좀 들라고 해라!”

윤 객주가 곳간문들이 즐비한 바깥마당을 들어서며 마당에서 비질을 하고 있던 더벅머리 사내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나를 따라 들어오너라.”

윤 객주가 ㅁ자 집채의 마당을 지나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고 벽 쪽으로는 문갑과 서랍이 빽빽하게 박힌 삼층장이 벽면 가득하게 차있었다. 문갑 위에는 물론 벽에 걸린 고비에도 서책 모양으로 묶여진 문서와 종이 두루마기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방안에는 온통 장부들로 어지러웠다.

“일단 우리 집에서 일을 거들며 장사를 배우도록 하거라.”

“예. 고맙습니다요.”

풍원이는 너무나 고마워 무슨 말로 그 마음을 표현해야할지 몰라 허리만 굽실거렸다.

“문자는 깨쳤느냐?”

윤 객주가 풍원이에게 물었다.

“예?”

“천자문은 뗐냐 이 말이다.”

“아,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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