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바다색은 마치 파란색 잉크를 풀어 놓은 듯 청명했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하늘과 해수면의 시작과 끝의 경계를 흐려 놓았다. 우리가족은 퍼시픽 수트라하버 리조트 선착장에서 보라색 수건을 한 장씩 받아 작은 배에 올랐다. 리조트 앞바다에 위치한 자바 섬으로 해양스포츠를 하러 가는 중 이었다.

우리를 태운 작은 배는 수평선을 밀어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아침저녁 선뜻선뜻한 날씨에서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으로의 공간이동의 설렘은 하루 만에 끝이 났다. 내리쬐는 태양을 원망하며 창 넓은 모자로 얼굴을 덮었다.

인간의 간사함이란…

자잘한 일정들은 패키지 비용에 포함돼있고 꼭 해야 할 일정들은 옵션으로 빼놓는 여행사의 꼼수에도 이젠 익숙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할 수 있는 종목들은 제외하고 자바섬에서만 가능한 씨 워킹(sea walking)옵션을 선택했다. 우주인들이 쓰는 것 같은 커다란 헬멧을 쓰고 7~8미터 바다 속으로 내려가 걸어 다니며 열대어들을 감상하는 상품이었다. 일인 당 80달러의 비용을 치르고 가이드를 따라 작은 배를 타고 섬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바다 가운데로 나갔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의 준비운동과 물속에서의 주의사항 등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도중 한 무리의 여행객이 도착을 했다. 래쉬가드에 워터 레깅스, 비치팬티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4~50대 아줌마 다섯 명이었다.

평상시에도 멀미가 심한 나는 이미 리조트 선착장에서 출발 할 때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딸이 결혼하고 처음으로 사위까지 동반한 여행에서 불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내색을 않고 있었다. 일렁이는 배위에 있자니 속은 점점 불편해졌다. 얼른 바다 속으로 내려가면 덜할 듯 싶어 주의사항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반바지에 티셔츠로 대충 차려입은 내 모습이 옆의 아줌마들 일행과 너무 비교 되어 얼른 바다 속으로 숨고 싶은 마음도 한 켠엔 있었다.

드디어 바다 속으로 입수 할 차례가 되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배 난간을 내려가는 순간 갑자기 뒤늦게 도착한 아줌마 일행들이 “저기요”하고 우리를 불렀다. 나는 이미 바닷물에 한발을 담그고 내려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맨 뒤에 있던 남편이 그들의 일행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우리한테 헬멧을 벗으라고 했다. 나와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헬멧을 벗었다. 이유인즉슨 그 아줌마들 일행 중에 한 사람이 멀미를 해서 자기네가 먼저 바다에 들어갔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 부탁에 남편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을 했다. 나도 멀미를 해서 안 된다고 했으나 남편은 이미 자기의 헬멧을 벗어 빨간 비치웨어를 입은 여자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씨 워킹을 끝내고 나올 때 까지 20분을 일렁이는 배위에서 더 기다려야했다. 아니, 이미 도착해서 20분정도를 기다렸으니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남편의 고질병인 대책 없는 양보심이 도지는 순간이었다.

사위 앞이니 싸울 수도 없고 나오지도 않는 헛구역질을 만들어 큰소리로 웩웩 거리며 힘겨워 하는 척 과장된 쇼를 했다.

미안 했던지 멀리 산을 봐라 시야를 멀리 둬라 했지만 이미 뒤집어진 속은 가라 앉지를 않았고 결국엔 뱃속에서 부글거리던 분노를 다 토해내고 호텔로 돌아와 눕는 신세가 되었다.

배려심이 지나친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가족들은 안 겪어도 될 불편을 겪어야하는 일이 종종 있다.

만석인 식당에서 대기를 할 때 뒷손님이 불평을 하면 순서를 내어 주는 건 다반사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내리는 사람이 불편할까 싶어 벽에 붙다시피 하고 길을 터준다. 언젠가 둘이 탄천에서 산책을 하는데 맞은편에서 한 가족인 듯 한 네 명이 일렬횡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양옆은 풀이 무성히 우거진 풀밭이었고 좌우측 두명씩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남편의 손을 꽉 잡고 무언의 눈치를 주었다. 당연히 저 사람들이 둘씩 줄을 바꿔 길을 비켜야한다는 의미로….

하지만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네 명의 가족은 대형을 바꾸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편에게 떠밀려 무릎까지 풀이 올라오는 풀숲으로 내려섰고 네 명의 가족은 당당히 우리 앞을 지나쳐갔다.

운동화 바닥에 잔뜩 묻은 진흙을 펑펑 털어내며 그 한쪽으로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진정 시켰다.

남편은 이러한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다. 집안일에서도 직장 일에서도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남편 때문에 나 또한 더불어 맘에도 없는 양보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라고 하며 적당한 양보를 요구하지만 남편에겐 소귀에 경 읽기다.

결국 그 버릇이 멀리 외국에까지 나가 도지는 바람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자바 섬의 하늘을 창밖에 둔 채 호텔방의 하얀 천장만 눈에 담고 누워 있어야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