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스물이 되자마자 공부에는 당최 취미가 없는 둘째가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로 떠났었다. 그리고 꼬박 일 년 남짓 일을 하고 돌아왔다. 아이가 일한 곳은 오클랜드 근처 해변이 보이는 초밥집이었다.

포장 판대로 초밥을 포장하고 튀김 요리를 하는 등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는 노동이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한결 성숙해져 있었다. 스스로 자신이 번 돈으로 먹고 자고 생활한 경험이 주는 성숙함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힘들게 일하고 와서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같이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한국이 더 좋다고 한다. 소소한 일상을 같이 할 수 있는 익숙한 공간과 행위들이 너무도 그리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재미있는 지옥이라 하고 뉴질랜드를 지루한 천국이라고 한다. 지루함과 재미가 공존하기에는 어려운 일일까? 충분히 좋은 삶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둘째를 보면서 나 역시 스물의 시절의 나를 떠올려본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을 가기를 바랐다. 나 역시 대학을 가지 않은 나의 삶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고, 당신들이 누릴 수 없는 것을 자식들은 누리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충분히 좋은 삶을 생각할 수 없는 조건의 시대 상황 속에서 사셨다. 살아남은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였고, 배불리 먹고 병들지 않고 전쟁이 없는 사회였으며 열심히 일해야만 겨우 먹고사는 삶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부모님께 태어나게 해주셔서, 오늘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지 못했다. 어버이날은 의례적인 선물을 하는 일, 함께 식사 하는 정도의 행사 날이었다. 부모님이 천날 만날 살아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느 시간까지는 살아주실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라진다는 것을 이미 예정돼있고, 그 예정된 시간 속에는 불현듯 다가오는 것들로 채워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은 부질없다는 허무감만이 아니었다. 충분히 좋을 수 있는 시간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좋을 수 있는 추억들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것, 부모님을 떠올리면 안타까움이 먼저 자리 잡는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에 대해 좀 더 내밀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혼자서는 살기 좋은 세상은 만들 수 없다. 어버이날을 정해두고 꽃을 달아드리고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나눌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어떤 특정한 날이 아닌 늘 그렇게 기쁘고 즐겁고 소소한 다툼이 공존하며 서로가 충분히 좋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내일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세상을 바꾸는 곧고 빠른 길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자신이 찍은 한 표가 어떻게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이다. 최소 한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최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선택은 누구여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투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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