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는 안보를 거쳐 새재나 하늘재를 넘으면 바로 영남 땅이었다. 한양과는 물길과 육로가 닿아있어 경강상인들이 싣고 온 각종 해산물과 장사꾼들의 등짐에 의해 육로로 옮겨진 온갖 물산들이 모여들어 마포에서 올라온 경강선이 나루에 닻을 내리는 날이면 유주막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풍원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주막에서 만난 중년사내를 따라 유주막으로 갔다. 중년사내가 전날 말했던 것처럼 유주막 나루터에는 큰 배가 정박해있었다. 청풍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큰 배였다. 배에서는 바리바리 묶은 짐들이 담꾼들에 의해 강가 나루터로 부려지고, 그 언저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큰 배에서 내려지고 있는 물산의 규모에 풍원이는 위압감을 느꼈다.

“아저씨! 저 배가 경강선인가요?”

“그렇단다.”

“저런 배에는 뭐가 실려 있나요?”

“이 동네에서는 나지 않는 물산들이다. 황해바다에서 나는 해산물과 갖은 산물들이 그득하게 실려 있고, 아마도 네가 이제껏 보지도 못한 진귀한 물건들도 엄청나게 실렸을걸.”

“저런 물건들은 어떻게 사고 파나요?”

풍원이는 배에서 끝없이 부려지는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보며 저 많은 것들이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왜 사려고?”

“저도 저런 귀한 물건들을 한 번 사서 팔아보고 싶어요. 귀한만큼 이문도 많이 남을 것 아닌가요?”

“너 같은 좀팽이한테 경상들이 물건이나 준다냐?”

중년사내가 가소롭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저런 물건들은 누구한테 파나요?”

“저런 큰 배들에 실린 물산들은 대부분 나루에 있는 객주들이나 큰 전 주인들이 도거리를 한단다. 객주들은 다시 전이나 큰 장사꾼들과 보부상들에게 넘기고, 큰 전에서는 관아에 공물로 넣기도 하고 직접 팔기도 한단다.”

“경상들은 사람들에게 직접 팔지는 않나요?”

“직접 산매를 하는 경상들도 있긴 하지만 특별한 경우고, 거개가 객주들한테 넘기지.”

“직접 팔면 이문도 훨씬 많이 남을 텐데 왜 그러는가요?”

“제일 큰 이유는 경상들은 그 고장 사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동네에서는 뭐가 필요한지, 지금 때에는 그 동네 사람들이 뭐를 필요로 하는지 경상들이 사정을 일 수 없지. 아무리 좋은 물건도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다면 누가 사겠느냐. 그러니 그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객주들이 경상들의 물건을 도거리해서 파는 거란다.”

“저 많은 물산들을 사려면 객주들은 돈이 무지하게 많아야 되겠네요?”

“경강선에 실린 물산들이 엄청나니 일단 그렇다고 봐야지. 그렇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란다. 때에 따라 경상들이 객주들에게 물산을 위탁하고 객주들은 그 물산을 팔아주고 대신 구전을 먹기도 하지.”

“어떤 때 그렇게 하는가요?”

“장사도 때를 맞춰야 하는 데 적기를 놓쳐 제때 물건을 처분하지 못해 물건이 상하면 그만큼 손해지 않겠느냐. 더구나 배를 타고 대량으로 물건을 거래하는 경상들은 물때를 놓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 산매를 하는 것이 어렵지. 그런 때는 객주들에게 자신들의 물산을 위탁한단다.”

풍원이는 중년사내가 말하는 물때가 뭔지를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청풍 읍성나루에서 도진태 선주의 배를 따라 다닐 때, 봄에 올라왔던 배가 물때를 놓쳐 여름장마가 질 때까지 몇 달씩이고 나루에 배를 정박시킨 채 선주들이 주막에서 주모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여봐 윤 객주, 여기네!”

그때 뱃전에서 중년사내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마 선주! 이게 얼마만인가?”

풍원이에게 자신을 따라다녀 보라고 한 중년사내는 성이 윤 씨인 객주였다.

“얼음이 풀려 내려갔다가 이번이 첫 뱃길이구먼.”

“어째 뜸했는가?”

“지난 겨우내 맞전한 곡물들을 처분하고 한 차례 더 행보를 할까 했는데, 가지고 올 물건도 마땅하지 않고, 갈수기까지 겹쳐 차일피일 미루다 이른 장마가 져 물이 불었기에 이제야 올라왔구먼.”

“이번엔 뭘 싣고 왔는가?”

“비가 종잡을 수 없이 내려 습하니 생물은 못 가져오고 미역하고 생선 말린 건어물 열댓 짐, 조기 염장한 것 다섯 독, 새우젓 열 독, 소금 쉰 섬을 싣고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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