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해 보거라. 물건이 귀하다고 해서 반드시 돈을 번다고 할 수는 없지. 아무리 물건이 딸려도 살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사고파는 것이 서로 운때가 맞아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운때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뭐라고?”

“그 운때라는 것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이 어린 친구, 순전히 맹물이구만!”

“그러게 말여. 우물가에서 숭늉 찾을 친구구먼.”

“귀신도 모를 그걸 네가 알면 날 좀 갈켜 주거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변 장사꾼들이 어이없다는 듯 풍원이에게 한마디씩 했다.

“무슨 말씀들이신지요?”

풍원이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장사에 무슨 법칙이 있겠느냐. 법칙이 있다면 부자 안 될 장사꾼이 어디 있겠어? 세월 따라 시세도 변하고 사람들 마음도 변하는 것이 세상 이친데 어찌 운때를 미리 알 수 있겠는냐?”

중년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풍원이는 장사라는 것이 단순히 팔고 사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깨우쳐가고 있었다. 주막에 모인 장사꾼들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풍원이에게는 새로웠다. 마치 다른 세계로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한동안 캄캄한 산길을 걷다 멀리 등불을 발견한 듯 한줄기 빛이 보였다. 뭔가 트이는 밝은 기운을 느꼈다. 풍원이는 장사꾼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흘리지 않고 들으려고 토끼 귀를 만들었다.

“내일 유주막에 경강선이 세 척이나 들어와 짐을 푼다네.”

조근조근 장사에 대해 일러주던 중년사내가 말했다.

“세 척이나 온대유?”

“내일은 유주막에 난리가 나겠군.”

“경강선이 뭐래요?”

처음 듣는 말에 궁금해진 풍원이가 물었다.

“이 친구 아주 숙맥이구먼!”

“자네 뭐하는 사람인가?”

“실은 장사를 배워보려고 청풍에서 왔습니다.”

“장사는 왜 하려고 그러는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유!”

“돈은 벌어 뭐하게?”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 집을 사서 여동생을 데려와야 합니다.”

“부모는 없느냐?”

“예.”

“동생이 남 집살이를 갔는가보구나?”

“예.”

중년사내가 물었지만 풍원이는 자신의 처지를 밝히고 싶지 않아 그저 대답만 했다.

“흐흠! 그래, 무슨 장사를 하려고 그러느냐?”

“정한 것은 없고, 뭘 하는 것이 좋을까 해서 둘러보려고 왔습니다.”

“둘러만 본다고 뭐가 보이겠느냐?”

“그래도 돌아다니다보면 뭐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어느 하세월에. 그렇게 다니다간 백날 댕겨도 소경 밤길 다니는 거나 맹 한가지여!”

중년사내는 풍원이의 무모함에 하품이 나왔다. “장사도 하려면 뭘 좀 배워야지 그렇게 무조건 대든다고 되겠느냐?”

“뭘 어떻게 배워야할지?”

“그럼 내일 나를 따라 유주막에 가보자꾸나!”

중년사내가 풍원이에게 동행을 허락했다.

“고맙습니다요!”

풍원이가 넙죽 절을 했다.

유주막은 남한강 지류인 달천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 마을이었다. 달천강은 보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 화양동을 거쳐 수주팔봉을 지나 탄금대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강이었다. 충주관아 인근에는 나루터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었지만 포구가 좁아 큰 배가 정박하기에 적당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유주막 나루는 물 흐름이 순하고 너른 갯벌이 있어 대선도 거뜬하게 정박할 수 있었고 읍성과도 과히 거리가 멀지 않아 충주 관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남한강 최대 포구인 목계나루가 지척에 있어 경강선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물때가 좋을 때는 달래강을 거슬러 올라가 괴산 목도까지 뱃길이 열리기도 했다. 목도에서 괴산을 거쳐 청안현까지는 잰걸음으로는 반나절 길이었다. 청안은 인근에서 제일 큰 고을로 이곳에는 청주나 멀리 보은의 장사꾼들까지 몰렸다. 한양에서 올라온 물산이 목도를 거쳐 충청도 내륙 깊숙한 곳까지 퍼지는 시발지가 유주막이었다. 유주막은 물길뿐만 아니었다. 한양과 부산진을 연결하는 대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인근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단월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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