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현대정치사는 남북문제에 대해 남북한은 한민족이므로 대화와 소통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측과 북한을 주적으로 삼아 대척해야 한다는 측으로 양분돼 왔다. 공교롭게도 대체로 전자를 지지하는 층은 진보, 후자를 지지하는 층은 보수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만의 진보와 보수 논리다. 반면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사회의 경우 기득권을 유지하며 사회적 이권에 관해 폐쇄적이면 보수, 함께 나누며 노동자, 시민 중심의 정책을 지향하면 진보로 분류된다.

이 같은 특수한 정치지형에서 수많은 국민은 수십 년간 줄기차게 소모적인 이념논쟁은 버리고 오직 민족의 평화와 국민만을 봐달라고 외쳤지만 정치권은 선거 때만 되면 북풍(北風)이나 색깔론을 들고 나와 오직 그것으로 승부를 걸곤 했다. 북풍은 어찌 보면 보수의 존재이유가 돼 왔다고 할 수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는 달라지고 있다. 고질적인 병폐로 우리나라 정치판을 둘로 갈라놓았던 북풍, 색깔론, 이념 등의 단어가 드디어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순실·박근혜게이트로 인한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과 관련한 내용이 이번 선거판을 휘저었지만 대선후보를 선택하는 국민의 판단기준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8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북풍을 일으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치명타가 됐던 것이 사실이다. 대선이 끝난 후 노 대통령의 NLL포기발언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져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북풍공작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이 북풍몰이가 먹히지 않을 전망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송민순 쪽지 논란’ 등으로 안보관 공격이 이어지는 국면에서도 이번 주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다른 보수 후보들의 상승에도 크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전문가들은 다음 주에는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대선 직전 색깔론을 제기한 송 전 장관의 여러 행보가 누군가에 의한 선거공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고 그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었으며 신뢰를 주지 못한 결과다. 문재인 캠프측은 송 전 장관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공직선거법 위반, 대통령 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으며 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공안2부(부장검사 이성규)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시민사회단체인 바른기회연구소도 같은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던 북풍공작을 원천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송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회고록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공무상 비밀누설도 재발하지 않도록 수사를 통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공무상 비밀이 선거 때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나쁜 관행도 이번 대선을 통해 뿌리 뽑아야 한다.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준 시대교체의 의미를 정치권에서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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