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뭘 하려구?”

“곧 다른 장사를 할 거예요. 그때도 저를 도와주세요!.”

“네가 장사를 한다면 뭐든지 팔아주마!”

풍원이가 장사를 그만두고 떠난다는 말에 그동안 거래를 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섭섭해 하며 아쉬워했다.

“전과 쌀은 아저씨가 맡아 주셔요.”

풍원이가 전과 자릿세로 받은 소곡 서른 석을 홍판식에게 맡겼다.

“다른 장사를 하려면 밑천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당분간은 큰 고을 장터들을 돌아다녀 볼 작정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떼어먹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게 맡기느냐?”

홍판식이 농을 했다.

“아저씨가 급해서 쓰셨다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쓰세요!”

풍원이는 홍판식이 떼어먹는다 해도 정말로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더 고맙구나. 전과 쌀은 내가 맡아 불려놓을 테니 언제든 필요하면 오거라!”

나이는 어렸지만 마음 씀씀이나 배포가 남다른 놈이라고 홍판식은 생각했다.

② 충주에서 윤왕구 객주를 만나다

풍원이는 이참에 세상 견문도 넓히고 좀 더 큰 장사를 해볼 요량이었다. 그래서 인근에서 제일 큰 고을인 충주와 남한강 상류에서는 가장 큰 난전이 틀어지는 목계 같은 큰 장부터 둘러볼 참이었다.

충주는 충청좌도에서는 으뜸인 큰 고을로 목사가 관장하는 곳이었다. 충주는 뱃길뿐 아니라 육로로도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육로인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지역이며, 중앙을 동서로 흐르는 남한강과 남쪽에서 흐르는 달천이 남한강과 합수하며 만든 평야가 발달하여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다.

예로부터 ‘중원을 차지하는 사람이 천하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은 삼남과 한양을 잇는 허리부분이어서 이곳을 차지하면 어느 곳으로든 마음먹은 대로 진출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였다.

풍원이가 청풍을 떠나 광아리 엉성벼루를 지나 충주 읍성 밖에 다다른 것은 하루해를 꼬박 걷고 난 후였다. 풍원이는 성 밖 삼거리에 있는 주막에 하루를 쉬고, 내일은 읍성으로 들어가 충주 곳곳을 돌며 차근차근 살펴볼 생각이었다.

주막에는 죽령을 넘어온 경상도 동쪽 사람들과 새재를 넘어온 경상도 남쪽 사람들, 그리고 달천을 따라 내려온 괴강 사람들이 모여들어 또 다른 장마당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따끈따끈한 세상 이야기를 앉은자리에서 주워들을 수 있었다.

“지금 상주는 병충해가 창궐해 벼가 자라기도 전에 배배 돌아가고 있어 보나마나 흉년이 뻔하구만. 농군들은 어떻게라도 살려보려고 제까지 올리며 법석들이지만 그런다고 버러지들이 없어지겠어?”

경상도 상주에서 왔다는 상인 주먹코가 그곳 사정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상주만 그런 게 아니라 삼남이 몽땅 마찬가지여.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웁구먼. 우리게는 봄장마로 물난리가 나서 가옥 수십 채가 떠내려가고 사람도 여럿 상했구먼.”

“보릿고개에 병충해에 수해까지, 없는 백성만 죽어라죽어라 하는구먼.”

“그러게 말여. 그렇잖아도 인쥐들 탐학으로 죽을 지경인데, 하늘조차 백성을 도와주지 않으니 어째 살겠는가.”

“지금 상주에선 쌀값이 폭등하고 있다오. 여기 쌀 한 섬을 가지고 가면 석 섬은 너끈이 만들 수 있지.”

“쌀값이 동네마다 다른가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풍원이가 주먹코 상인에게 물었다.

“넌, 그것도 모르느냐? 귀하면 비싸고 넘치면 싸지는 게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

풍원이는 똑같은 물건이라도 때나 사는 곳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럼, 싼 데서 사다 비싼 데 가서 팔면 돈을 많이 벌겠네요?”

풍원이는 청풍 홍판식에게 맡겨둔 쌀을 떠올리며, 그것을 상주로 가져가면 순식간에 몇 배의 이문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지!”

풍원이가 주먹코 상주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주변에 있던 중년 사내가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그 사내는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은 채 풍원이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했다.

“어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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