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나도록 등짐장수 덕구는 물론 채소전을 사겠다고 나타나는 작자도 없었다. 풍원이는 불안했다. 이미 접기로 한 장사를 다시 계속 할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풍원이는 가지고 있는 채마만 모두 팔면 일단 전을 접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문이 들어오면 이전보다도 훨씬 후하고 푸짐하게 물건을 팔았다. 그러자 삽시간에 장터에 소문이 퍼졌다. 풍원이네 채마전에 가면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주막집에서는 쌀 때 쟁여놓는다며 평소보다도 배가 넘는 물건들을 주문했다. 평소에 왕래하지 않았던 일반 사람들까지 싸다는 말에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풍원이네 채마전에는 문지방이 닳도록 온종일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푸성귀라고 우습게 생각했더니 저렇게 팔면 지푸라기를 팔아도 돈이 되겠네.”

“청풍 돈은 풍원이네 채마전으로 다 몰려가는구먼!”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들 하며 부러워했다.

“풍원아, 팔렸다!”

“네?”

“덕구가 식전 댓바람부터 헐레벌떡 달려왔더라구!”

풍원이를 찾아온 홍판식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약아 빠지기가 기름쟁이보다도 반들거리는 놈인데, 식전 댓바람부터 날 찾아와 흥정을 성사시켜달라고 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몸이 달았었나보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닳고 닳은 덕구를 꺾은 네 수완도 보통이 아니구나.”

“제 수완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달마다 쌀 한 섬을 벌수 있다는데 꿩병아리처럼 약은 놈이 쉽게 포기하지 못하지. 덕구가 파토를 내고도 네 채마전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가보다. 그런데 네 전에 뻔질나게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보고 다른 데로 넘어가면 클 났다 싶었겠지. 네가 수를 쓴 것 아니냐?”

“수라니요?”

“네가 덕구 보라고 일부러 사람들을 채마전으로 끌어들인 것 아니냐?”

“아니예요! 전 다만…….”

풍원이는 남아있던 물건을 처분하기 위함이었는데, 홍판식은 덕구를 끌어들이기 위해 풍원이가 꾀를 부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풍원이는 자신의 채마전이 팔렸다는 이야기에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 어떻게 됐어요?”

“도로 돌려보냈어!”

“왜요?”

제 발로 사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돌려보냈다는 말에 풍원이가 놀라 되물었다.

“소곡 스물 닷 섬을 줄 테니 자기에게 팔게 해달라는 겨.

“본래 스물다섯 섬 달라고 했던 것 아닌가요?”

“깎아서 스물 닷 섬이었지, 원래는 서른 섬을 달라고 했었던 것 아니냐.”

“그러니까 스물다섯 섬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야 그렇지만, 하도 제 욕심만 차리는 놈이라 얄미워서 첨대로 달라고 했다!”

홍판식은 속이 시원한가보다.

“그러다 또 안 산다고 하면 어쩌실려구요”

“덕구 그놈 지금 똥줄이 타서 서른 섬에 더 얹어달라고 해도 산다고 달려들걸. 그놈 계산속이 어떤 놈인데 식전부터 제 발로 찾아왔겠냐. 쌀을 싣고 곧 나타날 테니 걱정 말거라!”

“모든 게 아저씨 덕분입니다.”

“네 수완이지, 나야 거간밖에 한 일이 뭐 있냐.”

홍판식은 아직도 풍원이가 꾀를 부린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튿날로 덕구는 쌀 서른 섬을 싣고 와 풍원이 채마전을 인수했다. 채마전이 정리되자 풍원이도 서서히 청풍장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사람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더 잘해야 한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단골들한테 인사를 차리고 떠나거라.”

홍판식이 일렀다.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은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은혜랄 게 뭐 있느냐? 어려운 사람 보면 도와주는 게 사람살이지.”

말끝을 맺지 못하는 풍원이 등을 홍판식이 다독거렸다.

청풍장에서 장사를 그만두며 풍원이는 그동안 자신의 물건을 팔아주었던 단골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했다.

“섭섭혀서 어쩐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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