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숲 속의 거인(巨人)의 승리와 패배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콜로라도 주 롱피크의 경사진 곳에 거목(巨木)의 잔해(殘骸)가 있다. 박물학자들은 이 나무가 4백년이 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산살바도르에 상륙했을 때 이것은 묘목이었고 영국의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정착(定着)했을 때는 꽤 자라 있었다. 이 나무는 긴 생애 동안에 14번이나 벼락을 맞았다. 눈사태와 폭풍이 4세기에 걸쳐 수 없이 내습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이를 이겨온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딱정벌레가 몰려와서 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벌레는 나무껍질을 파 들어가 조금씩 끊임없는 공격으로 나무 내부의 활력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산림의 거인… 세월이 흘러도 시들지 않고 벼락에도 폭풍에도 굴하지 않던 거목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벌레, 사람이 손끝으로 문질러 버릴 수 있는 작은 벌레에 쓰러지고 말았다. 우리들 인간도 이 산림의 거목(巨木)과 흡사한 것이 아닐까. 그런대로 사나운 폭풍이나 눈사태라든가 인생의 벼락을 참고서 살아나가지만 고민이라는 작은 벌레… 하찮은 벌레 때문에 마음을 좀 먹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사소한 것을 마음에 두고 고민하는 것은 결국 사물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것을 축소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디즈레일리는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나의 많은 쓰라린 경험에 대단한 도움이 되었다. 나는 가끔 망각해도 좋을 사소한 일로 고민해왔던 것이다” 앙드레 모로아의 말이다. 우리가 이 지상에 머무는 기간은 겨우 길어야 백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1년만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 불평불만 때문에 고민함으로써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건강을 망가뜨리고 있다. 우리는 오직 한 번밖에 기회가 주어져 있지 않는 우리의 인생을 가치 있는 행동과 진실한 애정, 영구적인 사업에 바쳐야 할 것이 아닌가.

사무엘 리프스의 일기(日記)에는 해리 번이 목을 잘리던 모습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리는 처형대에 올라가면서 목숨을 살려 달라고는 하지 않았으나 턱의 부스럼을 다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우리는 커다란 재액(災厄)에는 용감하게 대결하면서도 대수롭지 않는 일에는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바둑의 격언에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 있다. 대국(大局)을 보지 않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는 인간의 약점을 경계한 말이다.

어떠한 일을 하던 항상 대국을 보라. 결코 딱정벌레에게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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