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란의 해피마인드] 내 이름은 튜울립
[오정란의 해피마인드] 내 이름은 튜울립
  • 충청매일
  • 승인 2017.04.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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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괴로운 사람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들, 그래서 새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한다. 이들과 집단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자리에서 별칭을 정하는 경우가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리는 별칭을 지어주기도 하고 이미 사용하고 있는 별칭이 있다면 그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는 프로그램 속에서 별칭이 주는 새로움과 안전감 그리고 수평적인 관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며칠 전, 집단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자리에서 나는 튜울립이란 별칭을 받았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의 이름은 장미이거나 라일락이거나 레몬이었다. 주로 꽃 이름이나 과일 이름, 식물의 이름을 별칭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들레라는 별칭을 가진 분이 나에게 튜울립이란 별칭을 주었다. 튜울립으로 불리자 나의 머릿속에서는 화단에 줄지어 피어 있는 노랗고 빨간 튜울립 꽃들이 떠올랐다. 튜울립이란 별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이 가정폭력을 당하고 살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토록 지난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걸까?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지독히 나쁜 사람을 만나서 그 대상(가해자)이 정신적인 질병이 있거나 가정환경으로 인한 특수한 개인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우리는 왜 그 폭력을 견디고 있었느냐고 먼저 묻는다. 그렇게 사는 것은 당신의 탓도 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폭력을 행사한 대상에게 어떻게 그런 폭력을 휘두르는지에 관해 묻지도 않으며, 당장 그 폭력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정을 지키는 것은 철저하게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 가족은 해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이나 시선이 여성에게 크고 작은 폭력을 참고 견디게 한다. 가정폭력을 집안의 일로, 개인의 일로 인식하는 사회적 토양에서는 폭력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다. 법은 여전히 힘 있는 편에서 해석된다.

꽃은 더 아름답게 피고자 하듯 사람도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 더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 이 평화로움을 누구 한쪽에서만 감당해야 한다면 이 또한 폭력의 다름 아니다. 일방적으로 누구 한 사람만 참으면 평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억압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답게 살 권리가 있다.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향기와 빛깔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활짝 피어나는 일일 것이다. 내 이름은 튜울립이다. 나는 튜울립 꽃으로 그녀들과 함께 그녀들의 곁에서 피어나고 싶다. 각자의 빛깔과 향기로 그 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자유로이 비상하는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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