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며칠 전 출장으로 오송역을 다녀오던 중에 청주IC 근처에서 이상한 광경을 두 가지 목격했다. 하나는 처참하게 가지치기를 당해버린 플라타너스 가로수였다. 1990년대 중반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던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남녀가 거닐던 가로수 길로 유명했던 그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너무나도 볼품없이 변해버렸다. 청주의 명물이 아니라 흉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또 하나는 그 플라타너스 나무 밑 둥에 박혀있는 여러개의 하얀 물체였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망치로 가로수마다 밑둥에 그 하얀 물체를 박고 있었다. 나무에게 놓아주는 영양제 주사인 것 같았다. 이 두 광경을 보면서 ‘병 주고 약 준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무와 자연에 대한 본능적 친밀감과는 달리 자연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자연을 바라보는 현대의 시각은 자연을 인간과 별개로 구별되는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최근 환경오염의 심화로 자연에 대한 관심과 보호 주장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켜 놓고 생각하고 정책을 시행한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무참히 잘려나간 가로수와 파헤쳐진 후 조경 작업이 완료된 하천이다. 즉, 자연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고 가꿀 수 있다고 보고 지나치게 자연에 개입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시각의 범위를 조금 더 확대해 보면 국립공원 지정,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보호수 지정 등이 그렇다.

얼핏 생각하기엔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지향해야 할 행동으로 보이고, 어느 정도는 그 주장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나마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구역을 지정하고(마치 섬처럼) 인간의 접근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는 것 같이 보여 진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의 근본 바탕에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할 수도 있고, 또 많은 부분 그렇게 해 왔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지역이라도 개발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보호구역의 지정도 철저히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고 여전히 인간과 자연이 구분되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사고방식으로는 그나마 섬처럼 고립된 보호구역의 의미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미래 세대에게 개발할 수 있는 자산을 물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 다소 충격적인 이들의 주장은 그러나 점점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 자연이라는 이름의 고립된 섬은 점차 줄어들고 있고, 그 섬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그 곳에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정원만 남아있을 뿐 생태계는 찾아볼 수 없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가로수에 죽지 않을 정도로만 가지치기 하고 난 후에 다시 힘을 내라고 영양제를 꽂는, 애완동물 다루듯 하는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미래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여지의 땅을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식(또는 그러한 사회)을 물려주는 것이 올바른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식이다. 길러진 애완 가로수가 울창한 길이 아니라 숲 속의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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