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풍원이는 홍판식이 하는 말의 뜻을 정말 알지 못했다.

“장사도 넘지 않아야 될 선이 있다. 그것이 신의다. 이득에만 눈이 멀어 닥치는 대로 남의 장사를 넘본다면 그건 도적질보다 더 못한 일이다. 그 장사 밑에 붙어 밥을 먹고 있는 목숨 줄이 얼마이겠느냐? 그런데 제 욕심만 차려 남의 장사를 망치게 한다면 그건 남의 목숨 줄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니 어찌 그것이 도둑질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홍판식이 따끔하게 일갈했다.

홍판식의 말을 들으며, 풍원이는 정말 부끄러웠다. 자신의 철없는 짓으로 마음 상했을  이웃 상인들을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음으로 양으로 자신을 도와주던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에게 손해를 끼쳤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장사에도 도리가 있는 법이었다. 장사라고 단지 돈만 벌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돈 너머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아저씨, 제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이담부턴 절대 남의 물목에 손을 대지 않을 테니 아저씨가 한번만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풍원이가 머리를 땅에 대며 진심으로 잘못을 빌었다. 이웃 어른들께도 일일이 용서를 구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풍원이는 자신이 취급하는 물목 외에는 남의 장사를 넘보지 않았다. 설령 풍원이네 채소전으로 물건을 가져오는 장꾼이 있어도 직접 거래하지 않고 그 물목을 취급하는 전으로 보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한 번 신의를 잃어버리자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정말 힘들었다. ‘한 번 훔친 놈이 두 번은 훔치지는 못하랴’라는 경계의 눈초리들 때문이었다. 어린 것이 장마당에 나와 장사를 하는 것이 측은하다며 하나라도 더 도와주던 이웃 장사꾼들의 태도가 예전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풍원이는 고민에 빠졌다. 이 장사를 계속 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 장마당에서 장사꾼들 눈 밖에 난 이상 예전으로 돌리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다고 눈만 뜨면 매일처럼 마주쳐야 하는 데, 모르는 척, 아니 그런 척 넘기며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무엇보다도 풍원이는 이웃들 보기가 남세스러웠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비록 장마당의 불문율을 모르는 한 행동일지라도 이웃이 보기에 풍원이의 장사 행태는 믿는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이나 다름없는 배신행위였다. 그러니 이미 상한 마음을 없었던 것처럼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저 그런 것처럼 시늉만 할 뿐이었다. 풍원이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풍원이는 사람들 사이에 살아가려면 돈 못지않게 중한 것이 신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풍원이는 청풍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저씨, 장사를 그만 접어야겠습니다.”

 그리고 홍판식을 찾아갔다.

“여기 있기가 그러하냐?”

“네.”

“그래, 어디로 가려고?”

“전이 처분되면 그걸 밑천으로 장사를 제대로 배워볼 작정입니다.”

“전은 나중에라도 어찌 될는지 모르니 그냥 두거라!”

“내놓겠습니다.”

풍원이는 여러 가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이번 참에 깨끗하게 지우고 싶었다.

“장사꾼에게 전은 농사꾼 전답과 같은 것이다. 농사꾼이 전답 없이 뭣을 할 수 있겠느냐. 전이라도 남아있어야 돌아오더라도 의지할 곳이 있지 않겠느냐? 네가 올 때까지 전은 내가 맡아주마!”

홍판식이 적극적으로 풍원이를 말렸다.

“그럼 뭘 가지고 외지에 나가 장사를 배운답니까?”

청풍장을 떠나면 당장 먹고 자는 것부터 돈이었다. 게다가 장사를 배워가며 장사도 하려면 돈이 필요할 것은 정한 이치였다. 그런데 홍판식은 채소전을 팔지 못하게 하니 풍원이는 걱정스러움에 답답하기만 했다.

“전은 빌려주고, 자릿세를 팔면 되잖느냐?”

“자릿세라니요?”

전이나 가가라면 사고파는 것이 당연했지만 자릿세를 판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풍원이는 이제껏 장사는 물건만 파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사를 하면서 목이 좋은 전이나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전은 다른 전보다 돈을 더 높이 받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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