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전 오가는 사람들이 빈번해지니 곡물전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한 마음이 아니었다. 홍판식은 괜찮다며 기반을 잡을 때까지 더 있으라 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파하고 남 잘되는 꼴이 눈에 신 세상에서 홍판식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은 풍원이에게는 복 중의 복이었다. 홍만식이 하늘님이었다. 홍만식은 사방팔방을 수소문해 풍원이 전을 알아봐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것을 살펴가며 경험 많은 홍판식이 다리를 놓아준 덕분에 풍원이는 자신의 전을 가질 수 있었다. 작고 허술한 전이었지만  자신의 전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아저씨 은혜를 어찌 갚을까요?”

“그래, 뭘루 갚을 것이냐?”

“아저씨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앞으로 장사 잘해서 잘사는 게 날 돕는 게다.”

“알겠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지 아느냐?”

홍판식이 들떠있는 풍원이에게 물었다.

“돈 많이 버는 거요!”

“돈을 많이 번 다음에는?”

“돈만 많으면 무조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럴까?”

홍판식이 답을 하지 않고 되물었다.

풍원이가 이사한 새로운 채소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들끓었다.

땅바닥을 기다 딛고서기가 힘들지 일단 일어서고 나면 그 다음부터 걷거나 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돈이 없을 때는 뭐를 한 번 해보려고 해도 이리 재고 저리 재보다 손이 오그라드는 경우도 숫했다. 돈줄이 보여도 돈이 없어 돈을 벌지 못했다. 그런데 수중에 돈이 생기자 자신감도 생겼다.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고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돈이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제 청풍장에서 채소전하면 풍원이를 떠올렸다. 그러다보니 주막집에서는 마늘·고추 같은 양념거리도 손질해 같이 대주기를 바랐다. 채소 못지않게 양념거리도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주막집 주인들이 직접 양념을 다듬는 시간이면 국밥이나 탁배기 서너 사발을 더 팔 수 있었다. 그것이 주막집 주인들에게는 훨씬 더 큰 이득이었다. 그러니 채소나 양념거리 다듬어주는 값을 지불해도 전혀 손해날 일이 아니었다. 풍원이 역시 채소를 사거나 다듬어 배달하는 길에 양념만 얹으면 될 일이었다.

풍원이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장사가 그저 물건만 팔고사면 되지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가 갈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경험이 미천한 까닭이었다. 채소전이야 풍원이가 처음 시작한 일이니 다른 장사꾼들과 충돌할 여지가 없었지만 양념은 아니었다. 청풍장에서 고추나 마늘 같은 양념을 취급하는 장사꾼들은 풍원이가 장사를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어왔다. 더구나 청풍 근방은 고추나 마늘의 특산지였다. 청풍장의 마늘상이나 고추상들은 오래전부터 장사를 하며 강상들을 통해 한양까지 이곳 특산품을 거래하고 있었다. 풍원이로 인해 고추나 마늘전을 하는 장사꾼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손해가 갔다.

“어린놈이 남 밥줄을 끊고 있어!”

“굴러온 놈이 박힌 놈 파내네!”

“이놈이 무서운 걸 모르네!” 

오랫동안 토박이로 앉은장사를 해오던 장사꾼들의 눈에 이런 것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상인들 사이에서 풍원이를 손보자고 벼르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세상 누구도 눈 번연히 뜨고 자기 밥그릇 줄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풍원이는 자신 일에만 빠져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풍원이를 아는 농민들은 푸성귀와 양념 뿐 아니라 다른 곡물들까지 가지고 와 팔아달라며 맡기고 갔다. 풍원이는 돈 되는 일이라면 물목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고팔았다. 풍원이가 물불 가리지 않고 장사를 하는 바람에 이웃 장사꾼들의 피해는 점점 커져갔다.

홍판식도 풍원이가 자신이 취급하는 곡물까지 넘어 들어와 장사를 하자 심사가 좋지만은 않았다.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에도 쉴 틈 없이 일하는 풍원이가 기특해서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웃 전포의 물목을 생각지 않고 닥치는 대로 팔고 사는 풍원이에 대한 시선이 험악해지자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눔아! 장사에도 법이 있다. 내가 그동안 말은 않고 있었다만, 서로 어깨를 마주치고 장사를 하면서 남의 장사를 넘보면 쓰겠느냐?”

홍판식이 풍원이를 불러 말했다.

“아저씨, 무슨 말씀이신지요?”

풍원이가 연유를 몰라 되물었다.

“정녕 모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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