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기는 글렀어.”

“그러게 말여. 저렇게 쪼잔해서야 뭔 돈을 번디야?”

“까는 공력에 한 접이라도 더 팔아야 돈이 되지. 저게 무슨 짓이리야?”

장사꾼들은 이문을 남기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물건을 사가는 사람이 아니라 파는 입장에서 모든 기준을 세웠다. 이문이 남는다면 사람을 속이는 것쯤은 예사였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장사꾼이 속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속는 자신들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장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장사꾼과 사는 사람들의 관계였다. 하지만 풍원이가 여느 장사꾼들과 다른 점은 물건을 사서 쓰는 사람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풍원이의 상술이었다. 풍원이는 주막집 주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원하고 있는지를 잘 간파하고 있었다. 곧바로 부엌에서 만들기만 하면 될 수 있도록 푸성귀와 양념거리를 깨끗하게 다듬어 주막집마다 배달까지 해주었다.

“그렇잖아도 손이 달려 동동거리던 참에 이렇게 손질까지 해오니 정말 고맙구나!”

“어린 것이 이걸 까느라 고생했겠구나. 마늘 값에다 깐 품삯까지 더 쳐줘야겠구나.”

“우리 집은 네가 맡아 놓고 매일 물건을 대거라.”

일이 많은 주막집에서는 온종일 손님들 치다꺼리에 바빠 양념을 미리 손질해 놓는 것도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이튿날 장사를 하기 위해 미리 양념을 갈무리해두려면 파김치가 된 몸을 끌고 밤잠을 줄여야 했으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런 틈새를 노린 풍원이의 상술이 부엌살림을 하는 여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얘야, 내달 초이렛날이 우리 시어머니 회갑인데 남새와 부침거리를 모두 네게 맡기마. 그러니 잘 좀 손질해서 들이거라.”

풍원이의 채소전 소문이 읍내 곳곳에 퍼지자 이젠 주막집뿐만 아니라 대소사가 잦은  양반집 안주인들까지도 미리 물건을 맞췄다. 가려운 데를 미리 알고 긁어주는 풍원이의 상술은 사람들 입소문을 타고 나날이 단골이 늘어났다.

돈은 혼자만 애쓴다고 벌리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 아등바등하면 밥술이야 먹겠지만 돈을 모으려면 남의 손을 빌려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 하루 두 냥을 벌기보다 열 사람이 하루 한 냥을 번다고 하면 품을 써도 몇 배의 이득을 남길 수 있었다. 큰 부자가 되려면 남을 부릴 줄 알아야 했다. 물론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거리가 넘쳐날 경우였다. 혼자 해도 남을 일을 남의 품을 사서 한다면 그건 빛 좋은 개살구요 개발에 편자였다.

풍원이 채소전은 하루가 다르게 일이 많아졌다. 그것은 문턱을 넘는 사람들 뒤꿈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홍판식의 곡물전 귀퉁이를 얻어 시작한 채소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곡물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에 버금갔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함을 타고난 까닭이기도 했지만 남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품목과 무엇보다도 물건을 속이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신용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장사라고해도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풍원이는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채소전에 물량이 늘어나자 풍원이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밤새워 일을 해도 주문받은 물건을 대주기가 버거웠다. 늘어나는 주문량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품을 사서 다듬는 날도 늘어났다. 풍원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문받은 물건은 밤을 새워서라도 반드시 약속을 지켰다. 풍원이와 거래를 한 번이라도 했던 이들은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그를 믿었다. 풍원이는 신용을 얻은 까닭에 일거리가 그만큼 거래하는 물량과 물목도 점점 늘어났다. 청풍 읍내 주막이나 유곽들은 물론 인근 길목의 작은 주막들까지도 풍원이네 채소전 물건을 주문했다.

채소전으로 들어오는 물량을 확보하는 일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풍원이는 채소전에 쭈그리고 앉아 푸성귀를 다듬고 있을 틈이 없었다. 풍원이는 청풍 인근 농가를 돌며 농군들이 길러놓은 채소들을 사들이기에도 하루해가 모자랐다. 그러나 남이 지어놓은 채소들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풍원이네 채소전에서 나가야하는 물건은 일정하게 늘어나고 있는데 농군들은 자기들이 먹을 만큼 농사를 짓고 남는 것을 장에 내놓았다. 그러니 물량이 들쭉날쭉했다. 풍원이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남의 땅을 빌려 직접 채소 농사도 지었다. 남의 물건도 받아 팔고 자신이 직접 농사도 지어 파니 이득은 배가 되어 늘어났다.

채소전이 성시를 이루자 자연스럽게 돈이 따라붙었고, 풍원이는 홍판식으로부터 빌려쓰고 있던 곡물전에서 나와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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