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는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변변한 직장조차 없다. 현재 직을 맡고 있는 청주민예총 사무국장도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 말조차 동료 예술인에게는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시민사회단체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도 박봉에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도 사정이 낫지는 않다.

종종 만나는 친구들의 경우 이직을 하거나 다른 직종을 찾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직장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봐 온 터라 새로운 출발점에 선 친구들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40~50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직장에선 밀려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에도 나이가 많다. 정년을 보장받는 직장인의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나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주변 상가엔 수많은 가게가 생겨난다. 치킨집, 족발집, 횟집, 당구장, 노래방, 커피숍, 편의점 등등 동네별로 상가밀집지역이 생겨난다. 하루에도 몇 집이 망하고 또 몇 집이 생겨난다. 다양한 프랜차이즈 간판이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 버는 이는 따로 있는 격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013년 기준 27.4%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OECD 평균인 15.8~16.1%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라 한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그리스, 터키, 멕시코뿐이다. 4가구 중 1가구가 자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소비하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고서는 운영하기 힘든 구조이다.

간혹, 장사가 안된다며 나라 경제가 망했다고 한탄하는 이도 있다. 대기업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논리다. 정작 빈 주머니 털어 가게를 찾는 손님은 대기업에 다니지 않는데도 말이다. 한국 경제성장이 대기업의 성장과 함께 이뤄졌으니 산업화시대를 살아온 이에게는 정당한 논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그 한계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보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을 한다. 대선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기초단체장 선거 때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경제성장을 최우선순위로 둔다. 경제 외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녹음된 음성처럼 여기저기에 울려 퍼진다. 누구도 서민이 처한 경제위기에 대해 속 시원한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한다. 당선되면 그뿐, 산업단지를 건설하여 기업을 유치하거나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거나 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수치상 전해지는 경제성장만이 있을 뿐이다.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먹고사는 일에 걱정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왜 걱정이 없겠는가. 경제 논리가 최우선인 사회에서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평생 사는 이유가 남보다 더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철없는 사람, 능력 없는 사람일지라도 오늘 나의 고민은 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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