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으하하하핫! 킬킬낄낄~ 아하하하하하!”

피터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호수의 물살을 가르는 듯 했다. 잔잔했던 호수가 그 소리에 놀란 양 갑자기 요동쳤다. 삽시간에 일어난 큰 파도가 크르릉 소리를 내며 요트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가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 걸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헌데 피터는 피하기는커녕 파도를 향해 요트를 몰고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이제 영락없이 죽는구나! 나는 요트 난간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하지만 호수에서 자란 그는 파도와 만나는 정점에서 노련하게 살짝 방향을 틀었다. 아이코! 쏟아지는 물벼락! 흠뻑 젖은 몸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다시 공략해오는 파도들. 요트에 탄 일행은 아우성을 쳤다. 이에 아랑곳없다는 듯 피터의 폭풍 운전은 계속되었고 우리는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 되었다. 허나, 정작 운전하고 있는 피터 자신에겐 물방울 하나 튀지 않았고 평형조차 잃지 않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그치지 않는 그의 웃음소리, 귀가 아팠다. 누구보다도 이 호수를 잘 알고 있을 그가 아닌가! 눈까지 치켜뜨며 점점 강도를 높이는데 이 노인, 혹시 악마가 아닐까?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 하늘이 노래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조난을 대비해 의지할 만한 것을 찾느라 바빴다. 이국 만 리 캐나다, 무스코카의 조셉 호수에서 근사하게 낚시하며 즐기는 것만 상상하고 초대에 응했건만 이 바다처럼 너른 호수에 어이없이 수장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내 복에 무슨 터무니없는 달콤한 꿈을 꾼 것일까?

간신히 그와 눈이 마주쳤다. 늙은 악동은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듯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순간 그가 구세주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마음인가? 이것저것 가릴 새 없이 돌아가자고 애원하다시피 하였다. 나를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순하디순한 눈으로 돌아왔고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은발에 헤밍웨이 소설가를 흉내 낸 듯한 수염. 그림에서 보던 인자한 노인의 모습의 전형처럼 보였다. 그의 변화무쌍한 모습이 돌변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른 일행들도 그의 마음이 탁구공처럼 뛸까봐 전전긍긍 한마디씩 도왔다. 끄떡끄떡하며 그는 드리웠던 낚싯줄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숭어 한 마리가 필연의 장난처럼 낚싯즐 끝에 애처롭게 걸려있었다. 놔 주자는 권유의 말도 잊었다.

노인은 스피드광이었다. 이번에는 싫다는 우리를 억지로 차에 몰아넣더니 마구 달리기 시작하였다. 코너에서도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마구 돌진하는데, 그와 함께 있기만 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이 묘한 초대를 우리는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가슴속이 서늘해졌다. 휘익~ 차를 스치고 지나가는 여우! 커다란 셔틀랜드 쉽종의 개가 짖어대며 숲을 질주한다. 우리 일행은 마치 공포영화의 등장인물이 된 것 같았다.

대낮인데도 뿌연 안개가 휘감은 어스름한 숲속에 고인이 된 휘트니휴스턴이 주연한 영화‘The Bodyguard’의 별장을 닮은 집이 있었다. 의자가 놓여있는 넓은 베란다. 그 계단 밑에는 수평선이 아득한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선착장엔 두 척의 요트가 닻을 내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호수를 한 눈에 만끽할 수 있는 침실. 하루만 묵어도 근심걱정이 다 날아갈 것만 같은 풍광이었다. 억만장자라는 집 주인. 세상 부러울 것이 무에 있으랴! 70세의 피터. 그러나 그는 그곳에 개와 단둘이었다.

꽝꽝꽝~ 그는 오디오도 엄청 크게 틀어댔다. 덕분에 집안 어디서건 심지어 숲속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래식도 이쯤 되면 공해에 가까운 것. 그는 너무나 적적했던 것일까? 우리의 요청에도 볼륨을 내리지 않았고 도리어 화를 냈다. 마치 음악을 이해 못하는 문외한 대하듯 했다. 이토록 남을 배려하지 않고, 고통에 눈 감아버리는 고집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고통을 즐기는 듯 느껴지는 행태는 어쩌면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처럼 느껴졌다.

삼십여 년 전 캐나다에 이민 간 남편의 친구는 골프클럽에서 만난 피터와 오랫동안 같이 운동을 했지만 그의 별장으로의 초대는 처음이라 했다. 한국에서 친구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방문해 줄 것을 청했다고 했다. 초대자의 태도에 우리를 데리고 간 친구는 미안해서 안절부절 못했다.

어둠이 내린 거실의 지붕의 창을 여니 별들이 쏟아졌다. 남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포커를 쳤고, 부인들은 차를 마셨다. 정막을 깨는 것은 그의 광란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그는 포커에서 이겨도 웃고, 져도 웃었다.

노인은 워낙 스포츠광이라 못하는 운동이 없었고, 안 해 본 운동도 없다는데, 지금은 낚시와 조개 수집을 광적으로 한단다. 집안 곳곳에 전리품처럼 물고기박제와 조개껍데기들이 반들반들하게 잘 정리되어있었다. 무엇이든 광적으로 빠져드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잡기나마 몰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가 공허하게 보였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다는 그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특히 여자를 믿지 않는단다. 배신감이 사람을 이토록 비정하게 만드는 걸까? 초대 손님을 대하는 태도로 보건대 그의 화증에 예외는 없는 듯했다.

그의 까다롭게 보이려 애쓰는 마름모꼴의 눈은 그러나 아직도 호기심이 가득하였다. 싫다고 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알아 달라고 소리치며 웃고 있는 듯 보였다. 마치 일부러 잘못을 저질러 놓고 엄마가 혼내주길 기다리는 아이 같은 눈빛이었다.

문득 그의 무의식 저변에 카잔차키스의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삶이란 어쩌면 한바탕의 춤과 같은 것은 아닐는지. 그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화증일 거라고 해석했던 것은 혹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난 선입견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에 이르자 새삼 그 노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비디오를 뜬금없이 틀어주는 소년 같은 노인. 아들이 정리해준 자신의 여행지를 찍은 것이었다. 어디에도 아들의 모습이나 가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아들이 편집한 작품에 함께 감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읽혀졌다. 우리네 부모님과 영락없이 닮은 모습이었다. 혼자서도 잘 산다며 온종일 온몸으로 외쳐온 피터에게 전혀 기대 못 했던 한줄기 따뜻한 마음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호수에 내렸다. 사방천지 분간 할 수 없는 어두움. 처음 만나는 어둠이었다. 오랫동안 어둠에 안겨있다 보니 이상하게도 나를 푸근하게 감싸는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사방 어둠에 갇힌 거실에서 그가 잠을 못 이루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많은 것을 가졌다는 그는 혹시 그만큼의 외로움을 쌓아 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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